봉은사홍매
볼그레하게 홍역의 열꽃처럼, 처녀 애들의 볼딱지 여드름 처럼,
돋아나는 홍매가 보고싶어 삼성동 봉은사에 다녀 왔다,
아직 철이 일러 홍매는 덜 피었는데 카메라를 들고 촬영나온
사진가 들만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봉은사는 나의 처가(妻家) 문중인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종문과
매우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나의 장인이 "하"(夏)자 항렬로 세종대왕의 5남 전주이씨광평대군의 (가평부정 加平副正)
16대 손 이시며 나의 처(妻)가 "범"(範)자 돌림 이니 전주이씨 광평대군의 17대 손에 해당한다,
현재 전주이씨광평대군파 종회 이택종 이사장은 종(鍾)자 항렬이니 18대에 해당한다,
통상 대를 논할때에 세종대왕을 빼고 그의 5남이신 광평대군 으로부터 몇대 라고 지칭한다,
왜냐하면 군왕이신 세종대왕은 광평대군의 어버이 이시지만 모든백성의 어버이요
만백성의 군왕 이므로 빼고 세보 대를 논하게 된다,
삼성동 <봉은사>의 전신인 <견성사>는 세종대왕의 5남이신 광평대군 부인 신씨가
남편인 광평대군 사후 남편의 원당으로 중창한 사찰 이었다,
광평대군 부인이 견성암을 남편의 원당으로 삼은것은 광평대군 묘에서 가장 가까운
절이 견성암 이었기 때문인것으로 보인다, 견성암과 광평대군 묘는 1444년(세종 26)대군이
세상을 떠난뒤 경기도 광주군 서촌 학당동(현재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선릉부근)에 처음 마련 되었다,
그로부터 51년 후인 1495년(연산군 1)성종의 왕릉을 학당동(현재의 선릉)으로 정하면서 대군의 묘는
대왕면 광수산(현재의 강남구 수서동)으로 이장 되었다, 조선시대 대왕면 광수산은 오늘날의
서울 강남구 수서동 일대로 현재 이곳에는 광평대군과 그의 아들 영순군 그리고 그 후손들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 묘역에는 태조의 아들인 무안대군 방번과 부인 왕씨의 묘도 있다,
광평대군이 세상을 떠난후 견성암을 묘사(墓寺)로 삼았던 신씨는 1466년경
광평대군 방에 속한 재산의 절반을 희사해 대가람을 조성했다,
1469년 신씨는 아들 영순군으로 하여금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를 필사 하게 하였는데
그 이듬해 영순군이 세상을 떠나자 이 책을 목판본으로 제작해 전국사찰에 유포 하였다,
이후 광평대군묘 인근에 선릉이 들어 서면서 광평대군묘는 광수산 자락(현재의 강남구 수서동 묘역)으로
이장 되었으나 견성사는 그대로 남아 선릉의 능침사 역활을 하게 되었다,
견성사로 부터 현재의 봉은사에 이르기 까지 이 절에서 수륙제가 설행되었다는 기록이 꾸준히 발견 되었다,
그 첫번째로 견성사에서 치러진 수륙재는 광평대군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천도재의 성격이 강했다,
이 시기에 발간된 견성사판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 는 현존하는 최고의 판본으로 이때 개설된
수륙재는 광평대군과 세종, 소헌왕후의 천도재인 동시에 국가와 왕실, 사부대중의 안녕을 기원하는
국가가 주도했던 행사였던 것이다,
1498년 성종의 능이 조성될 당시 견성사는 선릉의 능역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종대 이후 능역 안에 사찰을 조성 하는것을 금지 했기 때문에 연산군이 즉위한 직후부터
조정에서는 선릉안에 위치한 견성사를 철훼해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쳤다,
그러한 상소에도 불구하고 연산군은 대비의 뜻이라는 이유를 들어 매번 거절했다,
조정 대신들의 상소와 비판이 거듭되자 당시 대비였던 정현왕후는 결국 견성사를
능역 밖으로 옮겨 <봉은사>를 세울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견성사는 현재의 강남구 삼성동 현위치로 이전 되면서 <봉은사>로 개칭 되었고
정현왕후의 지원하에 대대적인 중창불사가 이루어 졌다,
봉은사의 중창이 끝난후 연산군은 봉은사에 각도 사찰에서 세를 거둔것과 세납한 소금을
옮겨 주라는 명을 내렸다, 봉은사에 여러사찰의 세와 소금이 지급된것은 능침사에 대한
일반적인 예우에 해당 하는것으로 당시 조선전기 능침사로 지정된 사찰에는 국가의 위전(位田)이
지급 되었다,
다음기회에 봉은사에서 설행된 광평대군 수륙제를 좀더 깊이있게 다루려 하며
전주이씨광평대군파 묘역에 관한 내용은 내 블로그 카테고리 "불교유적 문화재" 편에서
수차례 사진과 함게 언급 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 광평대군 졸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역 국조인물고, 태조실록, 연려실기술, 남희숙 논문 등,
2017, 3, 17,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