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서루
죽서루의추억
(주)성음 발행 "레코드음악" 1987년 가을호 에 실었던 상록수의 수필
"죽서루의추억"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삼척행 고속버스에 올라 눈잠깐 붙이고 나면 벌써 소사 휴게소에 이르고 그곳에서 커피 한잔하고 차에올라
차창에 어리는 경치에 몇번 눈 맞추면 둔내 터널에 이르고 긴재를 휘휘돌아 넘으면 태기산 줄기의 봉평터널이 나타난다,
"메밀꽃 필무렵" 의 장돌뱅이 들이 봇짐을 풀던 대화장터도 이근처요, 달밤에 왼손잡이 드팀전의 허생원이 재를 넘던곳도 이 근처일 것이며
이효석의 고향인 평창군 봉평면의 두메산골 마을도 이 근처 어디쯤일 것이다,
여기서 한 30분쯤 더 달리면 하진부를 거처 대관령의 고봉준령에 이르고 구비구비 수십구비를 돌아 내리면 강릉의 해풍과 만나고 해안을 따라
달리다 보면 명사십리 옥계. 망상 해수욕장, 북평을 지나면 바로 삼척땅이다. 내가 삼척을 처음 찾은것은 한 십년전쯤으로 회사 출장길 에서 였으며
아직은 한낮의 따스한 햇살이 남아있는 시월의 초가을 날이였다, 줄지어 늘어선 감나무엔 누런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파란 하늘과
뭉개구름 피어오른 시골풍경이 몹시 아름답게 느껴젖다, 삼척에 도착하여 곧 여관을 정하고 저녁 식사나하고 산책을 할겸 시내 이곳저곳을
정처없이 다니다가 시내 근교의 죽서루에 이르렀다,
초가을 해맑은 해가 뉘엿뉘엿 지는 석양 무렵이였다, 황혼에 물든 빨간 낙조가 몸서리 치도록 아름다웠다, 능금처럼 빨간 낙조가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진것은 처음 이었다, 죽서루는 삼척 교외를 흐르는 오십천을 끼고 깍아지른 바위 절벽위에 지은 퇴락한 누각이었다, 보물 제213호로 지정된
죽서루는 서기1275년 고려 충렬왕 원년 이승휴가 창건하고, 1403년 태종 3년에 부사 김효손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죽서루 동쪽에 죽장사 라고 부르는 절이 있엇고 죽죽선 이라 부르는 기생집이 동편에 있었다 하여 죽서루 라 이름 하였다 한다, 두타산 푸른숲이
이곳에 열려 있고 오십천 냇물이 굽이굽이 휘돌아 소를 이루고 천길 절벽에 기암괴석이 총총하고 그 위에 날듯한 누각을 지었다, 석양에 지는 해도
흰구름 타고 가다 머문다는 관동팔경의 하나다, 누위의 "제일계정" 은 1662년 부사 허목의 글씨요, "관동 제일루" 는 1711년 부사 이성조의 글씨요,
"해선유희지소" 는 이규헌의 휘호이다, 이곳에는 숙종대왕의 어제시를 비롯하여 이율곡 선생 외에도 여러명사들의 시가 게시되어 있다,
죽서루의 특색은 하층 17개 기둥의 길이가 각각 다르고 천연 바위 위에 세워젖다는 점과 상층은 20개의 기둥으로 되어있어 대자연과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우리 조상의 훌륭한 건축기술과 슬기와 넑을 였볼수있는 아름다은 명승인 것이다, 죽서루를 이리저리 살피며 구경 하다가 루옆
풀숲에서 들려오는 감미로운 기타 소리에 발걸음을 멈춰섰다, 풀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나 살곰살곰 다가가 보니 오십천을 굽어보는 절벽
바위 위에 한 소녀가 다소곳히 앉아 기타를 치고 있는것이였다, 열일곱 여덟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는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몸이 불편한듯
의족을 나란히 세워두고 있엇다, 그 소녀는 타레가 의 "알함브라 궁전의추억"을 치고 있었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몇 발자욱 뒤로 물러서서 잔디밭에 숨어 앉아 그 곡이 다 끝날때 까지 숨죽여 들었다, 소녀는 그 곡 말고도 몇곡을 더 연주
하였다, 얼마쯤 지났을까, 소녀는 기타를 등에 메고 의족으로 내쪽을 향해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소아마비 인듯 한쪽 다리를 쓰지 못했으나 해맑은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소녀는 내가 기타 연주를 흠처 들은것을 알기라도 한듯 생끗 미소를 짖더니 총총히 가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소녀가 보이지 않을때까지 물그럼히 소녀가 가는 쪽을 향하여 바라 보았다, 벌써 거리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소녀는 시내쪽으로 곧 사라저
보이지 않았다, 어둠을 뚫고 가로등엔 희미한 수은등이 켜지고 초가을 밤 바람이 스산하게 옷깃에 스며 들었다.
아직도 귓가에는 타레가의 알함브라궁전의추억 이 들려오고, 동공에는 기타를 치던 소녀의 모습이 남아 있는데,, 한동안 어둠속에 묵묵히 앉아
검은 유령으로 변해버린 누각의 형체를 바라보며 깊은 감회에 젖어들고 있었다, 벌써 하늘엔 총총히 별이 돋아나고 찬이슬이 내리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시장끼를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날밤은 알함브라궁전의 추억과 죽서루의 감회로 밤을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다,
그후 여러차례 삼척을 찾게 될때마다 맨먼저 죽서루를 찾아가 그 소녀가 앉았던 바윗돌을 찾아 그날의 향수를 떠올리곤 한다, 이제 그 소녀도
어른이 되었겠지,, 어차피 추억이란 과거 속에서만 살아있는 꿈의 껍질이긴 하지만, 초가을 황혼을 듬뿍 받으며 죽서루에서 만났던 긴머리
소녀와 타레가의 알함브라궁전 의 추억은 영원히 잊을수없는 마음속의 빛바랜 앨범으로 남아있다,
사진촬영 2015, 1, 9,
오십천 과 깍아지른 절벽위에 지은 죽서루
죽서루 정면 풍경, 현판에 관동제일루, 죽서루 라 쓰여있다,
이규헌 의 휘호 "해선유희지소" 현판
"제일계정" 부사 허목의 글씨 현판
죽서루 중건기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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