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의가을
"인적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송춘희 노래 "수덕사의 여승" 유행가 때문 더욱 유명해진 사찰, 수덕사,,
충청도 내포땅 가야산의 가장 이름높은 명승지,, 수덕사,
수덕사는 가야산 남쪽 덕숭산(580m)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수덕사는 "청춘을 불사르고' 를 쓴 시인 김일엽 스님이 머물었던 곳 이다,
일엽 스님은 1896년생으로 본명은 김원주(金元周), 목사의 딸이였던 일엽은
23세에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3,1운동후 일본에 건너가 동경영화 학교에 다니다
귀국하여 잡지 "신여자' 를 창간하고, 시인으로 신문화운동, 신 여성운동에
적극 참여 하였다.
38세때 일엽은 수덕사 만공 스님을 만나 발심하여 견성암에서 머리를 깍았다.
현재 수덕사 대웅전 아래쪽 환희대가 옛날의 견성암이다.
일엽스님은 1971년 세수 76세, 법랍 38년으로 장수 하였다.
수덕사 입구의 수덕여관은 재불화가 고암 이응로 화백의 본부인이 운영하던 곳이기도 하다.
고암 이응로 화백은 작가적 열정이 대단한 화가였다.
1957년 고암이 자신의 예술을 국제 무대에서 펼처볼 의욕으로 독일을 거처 파리로 갈때
그는 이화여대 제자였던 박인경 여사와 함께 갔다.
그렇게 버림받은 고암의 본부인은 초가집 수덕여관을 지어 운영하며 살았다.
고암은 1968년 이른바 동백림공작단 사건에 연루되어 1년여 감옥살이를 하기도 하였다.
수덕사는 그 외에도 화가 나혜석이 머물던 곳이기도 하다.
나혜석은 1896, 4, 28,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1948,12,10, 향년 52세로 생을 마감한
서양화가로 도쿄여자 미술전문학교 유화과를 졸업 하고, 정신여자중고교 교사와
영생중학교 교사를 역임 하였다.
나혜석은 김우영과 결혼 하였으나 외교관 최린 과의 염문으로 이혼하고
만년을 이곳 수덕사 에서 보냈다.
수덕사를 말하며 빼놓을수 없는곳이 있다.
바로 수덕사 대웅전 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건립 되었으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 강릉 객사문 등과 함께
우리나라 목조 고건축의 정수라 할수있다.
수덕사 대웅전의 건축양식은 맞배지붕에 주심포 형식,
기둥은 위 아래는 좁고 중간부분이 볼록하게 배가부른 배흘림 기둥으로 되어있다.
배흘림 기둥 형식은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나라 목조건축의 중요한 한 특징이며
파르테논 신전등, 그리스 고대 신전 에서도 이형식이 채택된
이른바 엔타시스(entasis)라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수덕사를 찾아 갔던날, 마침 일요일 이라서 관람객이 어찌나 많던지
내가 촬영하고저 하는 포인트에 카메라를 댈수가 없어
할수없이 가을 분위기 나는 몇곳을 촬영 할수밖에 없었다,
2014,10, 26, 촬영,
수덕사 대웅전에서 사천왕문으로 내려가는길
수덕사 사천왕문
수덕사 대웅전
수덕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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