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서원
돈암서원, 遯巖書院,
사적 제 383호, 건립시기 1634년, 면적 5,590m2,
소재지 /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리 74
배롱나무꽃 풍경이 아름다운 곳을 들라면 많은곳을 떠 올리게 되지만
논산의 돈암서원을 들지 않을수 없다,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12년) 김장생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여 1659년(효종 10)에는 김집, 1688년(숙종 14년) 송준길, 1695년에는
송시열을 각각 추가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향토서원이다,
당시에는 현재의 연산면 임리(숲말)에 소재 하였는데 서원 서북쪽에 "돈암"
이란 큰 바위가 있어 서원의 이름을 "돈암" 이라 하였다 한다,
돈암서원은 고정산 줄기가 이어지는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을 향해
앞으로는 들판을 가로질러 연산천이 흐르고 뒤로는 고정산 줄기가 배산을 형성하는
배산임수 형태로 풍수지리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길지, 명당이라 할수 있다,
전면 좌측에는 계룡산이 있고 우측에는 대둔산이 있다,
2019, 8, 13, 촬영,
사당 숭례사
김장생, 김집, 송준길, 송시열, 네분의 위패가 봉안된곳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예학의 태두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이론적 배경은 이기혼융설이다.
그의 예학론은 임진왜란 이후 혼란해진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통을 바르게 하는 것'에 중점이 두어졌다. 이러한 정통주의적
예학론은 이후 집권세력의 정치이념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장생은 이이에게서 주자학을 전수받아 그 학통을 계승했다. 특히 그의 성사상을
이어받아 학문의 요체로 삼았으며, 이기심학관을 계승하여 일원적 이기심학관을 견지했다.
격물치지설에서도 율곡의 설에 따르고 있었다.
돈암서원에는 여러곳에 배롱나무가 있으나 사당인 숭례사 양쪽의 배롱나무꽃이 특히 아름답다
내삼문에서 바라본 숭례사
사당인 숭례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전면열은 퇴칸이고 후면 2열은 내부공간을 꾸며 네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내삼문
사당인 숭례사로 들어가는 문, 내삼문,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숭례사가 자리하고 있다,
사묘앞의 삼문은 어칸과 양 협칸을 별도로 하나씩 세우고 문과 문 사이에는 담이 쳐저있다,
묘문이 있는 담에는 들어가면서 보면 기와로 형상화된 글자가 오른쪽에 <지부해함>,
가온데에는 <박문약례>가, 왼쪽에는 <서일화풍>이 있다,
지부해함(地負海涵) / 땅이 온갖 것을 다 실어주고, 바다가 모든 물을 다 받아주듯 모든것을 포용하라,
박문약례(博文約禮) / 지식은 넓게 가지고 행동은 예의에 맞게 하라,
서일화풍(瑞日和風) / 좋은 날씨 상서로운 구름, 부드러운 바람과 단비, 즉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웃는 얼굴로 대하라,
돈암서원 관리소 건물
정회당
사계선생의 부친인 황강공께서 강학하던 건물
묘 당
양성당(정면 중앙) /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사계선생이 생전에 강학하던 강당이다,
정회당(양성당 좌측 뒷건물) /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후면 열 가온데 2칸을 마루방으로 두었다,
사계선생의 부친인 황강공께서 강학하던 건물로 대둔산 자락의 고운사터에서 1954년에 옮겨왔다,
장판각(양성당 우측) / 정면 3칸, 측면 2칸에 내부는 모두 마루다, 무고주 5량 집 구조이고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기단은 장대석 외벌 대로 하고 덤벙주초를 놓은 다음 두리기둥을 세웠다,
장판각에는 사계, 전서, 신독재, 전서, 황강, 실기 등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응도당 / 국가보물 제1569호
돈암서원에서 유생들을 가르키던 강당
양성당과 원정비
양성당은 사계선생이 생전에 강학하던 강당이며, 원정비는 양성당 앞에 있으며 송시열이 비문을 잣고 송준길이 글씨를 썻다
돈암서원 전경
'종교유적·문화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산 명재고택 / 노성향교 (0) | 2019.08.22 |
---|---|
파평윤씨 종학당 (0) | 2019.08.17 |
휴휴암 (0) | 2019.06.08 |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0) | 2019.06.05 |
초여름 공세리성당 (0) | 2019.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