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난설헌로193번길 1-29 (초당동)
강릉시 초당동에 위치한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과 최고의 여류 문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허난설헌 이 두 남매를 기념하기 위한 문학 공원이다.
이 공원은 허난설헌 생가 터,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전통차 체험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허난설헌 생가터는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널찍한 사랑 마당이
있고, 그 안에 네모나게 지어진 본채가 있다.
본채는 두 개의 대문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갈리는데, 그 사이에 곳간이 있어
내외를 구분하고 있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은 목조 한식 기와로 이루어진
단층 건물이다. 내부는 네모나게 난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안내 데스크와 만나고
이어 주전시실과 소전시실로 이어진다,
2019, 6, 1, 촬영,
허난설헌 許蘭雪軒 / 경번(景樊), 난설헌(蘭雪軒), 초희(楚姬)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
강원도 강릉(江陵) 출생. 아버지는 엽(曄), 오빠는 봉(篈), 남동생은 균(筠)이다.
현상(賢相) 공(珙)의 혈통을 이은 명문가문으로 유명한 문장가와 학자를 배출했다.
엽이 첫 부인 청주 한씨(淸州韓氏)에게서 성(筬)과 두 딸을 낳고 사별한 뒤에
강릉 김씨(江陵金氏)광철(光轍)의 딸과 혼인해 봉·초희·균 3남매를 두었다,
허난설헌은 문장가문에서 성장해 어릴 때에 오빠 봉과 동생 균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웠다. 아름다운 용모에 문학적 자질까지 뛰어나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어서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또 균에게 시를 가르쳤던 이달(李達)에게 한시 수업을 받았다.
허난설헌은 15세 무렵에 안동(安東) 김씨(金氏) 성립(誠立)과 혼인했으나 원만한
부부생활을 하지 못했다. 남편은 급제한 뒤에 관직에 나갔고 가정의 즐거움보다
기녀들과의 풍류를 즐겼다. 거기에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못하여 고독한 삶을
살아야했다.
사랑하던 남매를 잃은 뒤에 설상가상으로 뱃속의 아이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친정집에서 옥사(獄事)가 있었고, 동생 균마저 귀양 가는 비극이 연속됐다.
삶의 의욕을 잃고 책과 한시로 슬픔을 달래며 불우하게 살다 1589년 27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