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의 여름
덕수궁 하면 맨 먼저 떠 오르는것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늦가을
해질녁 스잔한 찬 바람을 맞으며 외투깃을 고추 세우고 철학자나
시인이 되어 덕수궁 돌담길을 상념에찬 표정으로 걸어가는 장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덕수궁은 사철이 나름대로 아름답지만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배롱나무꽃을 바라보며 석조전 주변 등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독서를 하거나 사색에 잠겨보는 것도 기분좋은 일이
될것이다,
덕수궁은 처음 월산대군의 집터였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어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에 경운궁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고종이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의미에서 덕수궁(德壽宮)이라 다시 바꾸었다.
1897년(광무 1)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부터
중화전을 비롯하여 정관헌, 돈덕전, 즉조당, 석어당, 경효전, 준명전, 흠문각,
함녕전, 석조전 등 많은 건물들을 지속적으로 세워졌다. 이곳은 고종의 재위
말년의 약 10년간 정치적 혼란의 주무대가 되었던 장소로, 궁내에 서양식
건물이 여럿 지어진 것이 주목된다. 1963년 1월 18일에 사적 제124호로
지정되었다.
2018, 8, 12, 촬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석조전은 고종황제가 침전겸 편전으로 사용하기위해 지은 서양식
석조건물이다,
석조전은 덕수궁 궁내에 있으며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황궁위 정전으로
계획 되었으며 1900년 착공하여 1910년 준공된 지하1층 지상 2층 규모의
석조 건물이다,
1911년에는 외국에서 나무를 들여와 석조전 앞 정원을 완성 하였다,
순 서양식으로 완성된 석조전은 서구화로 근대화 와 부국강병을 꿈 꾸었던
대한제국의 의지가 반영된 건축물 이다,
석조전은 접견실과 대식당, 침실과 서재 등을 갖춘 황궁으로 건립 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미술관으로 용도가 변경된 이후 국제회의장, 박물관 등으로
사용 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 되었다,
그후 석조전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미를 회복 하고자
2009년 부터 복원공사를 시작 하여 2014,10,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으로
개관 하였다,
1층에는 중앙홀, 귀빈 대기실, 접견실, 소식당, 대식당 등이 있고, 2층에는
황제 침실, 황제 서재, 황후 거실, 황후 침실, 테라스 등이 있으며 지하에는
영상실과 부속실로 구성 되어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예술과 역사를 함께 둘러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1938년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이 미술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해방 이후에는 석조전(지금의 ‘대한제국역사관’)
부속 건물로 사용하고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으로 사용하다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개관해 오늘에 이르렀다. 건물에는 우리의
역사가 흐르고 그 안에는 근현대 미술품이 가득하다.
중화전(中和殿)
덕수궁의 정전. 중화문과 함께 보물 제819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격적인 궁궐 중건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했으나
1902년 중화전이 세워지면서 정전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1905년 중건되면서 원래 2층이던 것이 1층이 되었다,
석어당(昔御堂)
석어당은 덕수궁에 유일하게남아있는 중층건물로 단청을 하지 않아 소박한 살림집 같다,
인조 즉위후 경운궁의 전각을 대부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으나 이 건물만은 보존하여
후에 경운궁의 중심이 되었다,
준명당(浚明堂) 즉조당(卽朝堂)
즉조당 일원은 인진왜란때 선조가 임시로 거처했던 곳으로 덕수궁의 모태가 된곳이다,
1897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여한뒤 1902년 중화전을 건립하기 전까지
정전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덕수궁 석조전 앞에 있는 앙부일구
앙부일영이라고도 한다. 네 발 달린 반구형의 솥처럼 생겼기 때문에 앙부라는 이름이 붙었다.
세종의 명으로 정초·정인지 등이 고전을 연구하고, 이천과 장영실이 공역을 감독하여 1434년에
만들었다고 하며, 이후 조선말까지 계속해서 만든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공중용 앙부일구는 2개를 만들어 종묘 남쪽 거리와 혜정교에 돌로 대를 쌓고 그 위에 설치하여
일반 백성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재료는 보통 청동이지만, 자기나 돌을 깎아 만든 것도 있다.
'종교유적·문화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릉 선교장 (0) | 2018.08.18 |
---|---|
배롱나무꽃 필무렵-4 / 노성향교 (0) | 2018.08.17 |
배롱나무꽃 필무렵 -3 / 종학원 (0) | 2018.08.10 |
배롱나무꽃 필무렵-2 / 신원사 (0) | 2018.08.09 |
배롱나무꽃 필무렵-1 / 돈암서원 (0) | 2018.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