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선교장
말복을 지나면서 더위는 한풀꺽인 느낌이다,
더 늦기전에 가야할곳이 있어 이른새벽 02시 집을 나서
강릉 안반데기 고냉지 배추밭에서 일출을 보고 선교장을 찾았다,
가을하늘 같은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둥둥 떠가고 바람은
선들선들 송글송글 맺힌 이마의 땀방울을 식혀주었다,
선교장을 갈때마다 맨먼저 눈에 들어오는것은 선교장을
위엄있고 당당하게 호위하고 있는 선교장 뒤뜰 소나무 숲을
볼때마다 한국인의 기상과 선비의 품위를 엿보는 느낌이다,
선교장은 조선 영조때(1703년) 효령대군의 후손인 이내번이
족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발견한 명당 자리에 집을 지은 후,
그 후손이 지금도 살고있다.
총건평 1,051.24m²(318평)으로, 긴행랑에 둘러싸인 안채, 사랑채,
동별당, 가묘 등이 정연하게 남아있고, 문 밖에는 수백평의 연못
위에 세워진 활래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정원까지 갖춘 완벽한
구조를 보여 준다.
선교장은 건물 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주거생활과 생활용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주변경관과 어우러진
풍치가 아름답다. 선교장의 사랑은 열화당이라하며, 여기에는
용비어천가, 고려사 등 수천 권의 책, 글, 그림 등이 소장되어 있다.
2018, 8, 17, 촬영,
선교장 배치도
행랑채
전통문화체험관
열화당과 그 뒤뜰의 배롱나무
열화당(悅話堂)
열화당은 남주인 전용의 사랑채로서 내번의 손자 후가 순조15년(1815)에
건립하였으며 당호인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悅親戚之情話)에서
따왔다고 한다. 열화당은 3단의 장대석 위에 세워진 누각형식의 건물로
아주 운치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서별당 - 열화당
초 정
활래정(活來亭)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 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순조16년(1816)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세웠다. 정자명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 중
"爲有頭源活水來" 에서 땄다고 한다. 이 건물은 마루가 연못 안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친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활래정은 벽면 전부가
분합문의 띠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옆에 접객용
다실이 있다.
할래정과 연지
강릉 선교장 안내 간판
동행한 사진가
가족대표 박명서 / 새롬 조철행 / 상록수
귀로에 들른 고속도로 홍천 휴게소
홍천 휴게소에서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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