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헌
안반데기 고냉지 배추밭에서 일출 촬영을 하고 그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강릉 오죽헌을 오랫만에 찾아갔다,
오죽헌은 몇년사이 몰라보게 달라저 있었다,
오죽헌은 그동안 대대적인 정화사업을 벌려 넓고 아늑한
공원이 되어 있었다,
오죽헌은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출산한 곳으로 신사임당 영정과
그의 아들 율곡 이이 영정을모신 사당이다, 오죽헌 문성사에는
율곡 이이의 영정이 모셔저 있고 몽룡실에는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저 있다,
신사임당 영정 소개문에는 "신사임당 영정은 1965년 이당 김은호
화백에 의해 그려저 오죽헌 몽룡실에 봉안 되었으며 1986년
표준영정으로 지정 되었다", 라고 쓰여 있다,
한편,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무렵" 의 무대로 잘 알려진
봉평, 메밀꽃밭으로 가는 길목에 "판관대"(判官垈)라는 비석이 하나
초라한 모습으로 외롭게 서있다,
일반 관광객들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메밀꽃을 보려는 급한 마음에
이 작은 비석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지나처 버려 봉평에
"판관대" 라는 비석이 있는줄 아는 사람이 그리 흔치 않다,
당시 수운판관(水運判官)을 지내고 있던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李元秀)가
이곳 백옥포리에 거주하고 있던 아내 신사임당을 보러 왔다가 그날밤
율곡을 잉태하게 되는 용꿈을 꾸었던 자리다,
사임당은 그해(1536년)강릉 오죽헌으로 가서 12월 26일에 율곡을 낳았다,
그 용꿈을 꾼 집터가 곧 "판관대" 이다, 그 뒤 이 얘기는 궁중에까지 알려저
현종 3년(1662)에 사방 10리의 사패지와 영정을 내려주고 봄, 가을로
제향을 올렸는데 1906년에 고을 유생들이 평촌리 덕봉 산턱에 서재를
건랍한 것이 현재의 "봉산서재" 이다, (유흥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2권
산은 강을 넘지못하고 편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오죽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봉평 이야기가 길어젔다,
오죽헌과 봉평의 판관대, 봉선서재는 이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2018, 8,17, 촬영,
율곡기념관
오죽헌 정문
정문을 들어서면 먼저 초려공방이 있다
우체통을 볼때마다 "프란츠 슈베르트" 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중 "우편마차" 와
청마 유치환의 시 <행복> 중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라는 대목이 늘 떠오르곤 한다,
오죽헌 관리사무소
오죽헌 경내
오죽헌 / 몽룡실
오죽헌 이라 쓰여진 현판 우측편 문에는 몽룡실 이라 쓰여진 현판이 걸려있다,
몽룡실에는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저 있다,
'오죽헌'은 조선시대의 대학자 율곡 이이와 관련하여 유명해진 강릉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오죽헌은 조선 초기의 건축물로, 건축사적인 면에서 중요성을 인정받아 1963년 보물 제165호로 지정됐다.
이 곳 몽룡실(夢龍室)에서 율곡 이이(李珥)가 태어났다고 한다.
경내에는 오죽헌을 비롯하여 문성사(文成祠), 사랑채, 어제각(御製閣), 율곡기념관, 강릉시립박물관 등이 있다.
문성사는 율곡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며, 어제각은 율곡의 저서 <격몽요결>과 율곡이 유년기에 사용 하였던
벼루(용연)를 보관하기 위한 유품소장각이다. 한편 율곡기념관은 율곡의 저서와 신사임당의 유작을 비롯하여
매창·옥산 이우 등, 율곡 일가의 유품 전시관이다.
한편 강릉시는 1961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10월 25, 26일 율곡을 추모하는 율곡제전을 봉행하고 있다.
율곡 이이 / 신사임당 영정
오죽헌 몽룡실에 있는 신사임당 영정은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렸다 위에서 설명한바 있다,
그러면 현재 유통되고 있는 오만원권 지폐의 신사임당 초상화는 누가 그렸을까?
현재 사용되는 오천원권 지폐속의 율곡선생과 오만원권 지폐속의 신사임당 영정을
그린 화가는 이종상 화백이다,
서울대 회화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3학년때 전공을 동양화로 바꾸었다,
그는 1962년 국전에서 300호짜리 대작<작업>으로 수상했다, 이듬해 국전에서도
연달아 수상, 23살이던 1964년 최연소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종상 화백은 대작을 그릴때는 오랜 담금질을 거친뒤 직감으로 일필휘지 그리지만
영정을 그릴때는 그 반대로 그린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몇년씩 작업을 한다,
마치 학자처럼 치밀하게 자료조사와 고증작업을 거처 초본을 완성하고 화선지와
장지에 수차례 그리고 나서 인물을 재현해 낸다, 그는 깨알보다 작은 점으로 근육을
따라 가면서 그리는 육리문 기법과 인물에서 풍겨 나오는 인품을 그리기 위해서 화면
뒤에서 그리는 배채등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정통 영정기법을 이당 김은호에게서 배웠다,
할아버지뻘 되는 이당 김은호 에게서 전통 영정기법을 배운 인연으로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오천원권 영정을, 훗날 오만원권의 신사임당 영정까지 그리게 되었다,
- 함혜리 지음, 서해문집 발간, <아틀리에 풍경>, "이종상의 평창동 작업실" 참조 -
율곡 이이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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