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귀
내가 양지바른 산비탈에서
너를 발견하고
너의 이름을 호명 하기 전에는
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너는 아직 겨울잠 에서 덜깬 숲 이었고
낙엽 덤불속의 가랑잎 같은
한 존재에 불과 했다,
내가 비로소 너를 발견하고
마크로렌즈 속으로 너를 유혹 했을때
너는 수줍은 산골 새악시가 되어
내 카메라에 신방을 꾸렸다
너는 수줍고 낮설고 눈부셔
차마 얼굴도 들지 못하고
몸에 물가시 같은 소름이 돋았다,
너를 본 사람마다 너의 가녀린 몸매가
노루의 귓털을 닮았다 하여
"노루귀"라 이름표를 달아 주었다,
추위가 사위고 고양이 털 같은
따듯한 봄 햇살이
산능선을 간지럽히면
양지바른 산비탈 낙엽 이불 속에서
모질고 날선 대부도 해풍을 견디고
너는 한송이 봄 꽃으로 세상에 온다,
근처를 지나는 등산객도
나물캐는 아줌마도
꼭꼭 숨은
너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한다
너는 작고 여리고 수줍고 앙증맞아
눈 부벼 크게 호랑이 눈을 뜨고
너를 큰 소리로 찾지 않으면
너는 항상 귀먹어리 난쟁이로
꼭꼭 숨어 있다
물빠진 갯벌이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내려다 보이는 구봉도
해조음이 이따금 끼륵끼륵 대는 산 비탈에서
보송보송 솜털 나신에 망또를 걸친
수줍음에 낮선 화장끼 없는
너의 해맑은 얼굴을 유혹 한다
나는 오늘 한마리 가자미가 되어
미끌어지고 또 미끌어지며
산비탈에 납작 거머리 처럼
달라 붙어 너를 본다
2017, 3, 13, 촬영,
구봉도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