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한옥마을
현대 과학문명의 발달은 우리의 전통적 아름다운
풍경들을 모두 빼앗아 가 버렸다,
모든것이 수량적인 계량으로 그 척도가 결정되며
지위가 조장되는 씁쓸한 세상이 되었다,
설날의 세시풍속은 원래 농경문화의 유산이라 하나 세월의 변천으로
이젠 박물관 에나 가야 볼수있는 유물로 전락 했다,
연날리기, 제기차기, 엿치기, 윷놀이, 세배하기, 등등,,
없어진 옛 것이 어디 그뿐 이던가,,
동네 어귀 시냇가에는 어김없이 황순원 단편 "소나기" 에 등장하는
징검다리가 있었고, 작은 나루에는 나룻배와 뱃사공이 있었으며,
후미진 산 모퉁이를 돌아서면 으시시한 상여집이 있었고
동구밖 오래된 고목 느티나무 아래엔 빛바랜 서낭당 금줄이 걸려 있었고,
베르디의 오페라 "일토레바토레" 중 "대장간의 합창"이 생각나는,,
웃통을 벗고 풀무질하며 벌겋게 달궈진 쇠를 녹이던 대장간엔 근육이 튀어나온
건장한 대장간 아저씨가 있었다,
어머니 뒤를 병아리처럼 종종종 따라 오르락 거리던 집 뒷편 장독대,
주요섭의 단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에 등장하는 사랑채 방은
언제나 쩔쩔 끓었고 그 아랫목엔 장죽을 든 할아버지가 계셨으며,
할아버지 긴 장죽엔 풍년초 고약한 대찐 냄새가 쓴약처럼 배어 있었다
모내기 철에는 못줄을 잡았고 어머니가 이고온 샛밥은 왜그리 맛이 있었던가,
양은 주전자를 양조장에 갖고 가 막걸리를 사 들고 뛰어오다 절반은 흘려 버리기도 했고
궂은비 내리던 초여름, 원두막 밑을 살곰살곰 기어 참외서리를 하던 추억,,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설날 큰잔치 행사를 보며
이젠 사라지고 없는 옛 것들을 추억해 보았다,
2017, 1, 28, 촬영,
설빔으로 여자 애들은 꽃신을 선물 받기를 좋아했다,
내가 어렸던 시절에는 태화고무 말표신발이 있었다,
김용익의 소설 <꽃신> 중 일부를 소개 한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그녀가 신은 꽃신을 좋아했다,
그녀는 발이 부르틀가봐 흰 버선을 신었는데 학교로 가는 길에서 나는 가끔
그녀 보다 뒤져 가며 꽃신에 담긴 흰 버선발의 오목한 선과 배 모양으로 된 꽃신을 바라 보았다,
그 선은 언제나 달콤한 낮잠을 자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비가 온 다음날 물이괸 길에서 나는 그녀를 업고 넘어지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는 청개구리 처럼 등에 꼭 매달렸는데 나는 내 허리 양켠에서 흔들리는 꽃신을 얼마나 사랑 하였던가,
하지만 소년이 백정집 아들이란 것 때문에 모처럼 오고 간 혼담은 파탄나고
상도는 꽃신 신은 소녀와 영영 헤어지고 만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상도는 부산의 어느 장거리에서 처녀의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늙고 병든 몰골로 길바닥에 꽃신 몇 컬레를 놓고 팔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이내 숨지고 그의 아내가 꽃신을 피는 노점상이 되었다,
상도는 그동안 모은 돈을 꽃신파는 여인에게 내밀고 꽃신을 산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말했다,
당신 따님을 위해 이 꽃신을 가지시요,,
담요를 개켜 그 속에 돈을 넣고 꽃신이 든 꾸러미를 팔에 안겨 주었을때
부인은 머리를 약간 수그리고 가면서 말했다,
부인이 말했다,
그 애는 죽었다, 그 애는 지난여름 폭격에 죽었다,
시장 밖에는 바람이 눈을 휘몰았다,
바람에 날리지 않게 우산을 반쯤 펴서 꽃신을 가진 부인이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의 뒤를 따랐다,
.... 이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애처롭고 가슴이 메인다,
하지만 그 아픔 속에서도 가버린 첫사랑 소녀에게 보내는 상도의
달콤한 사랑의 감정은 꽃신 만큼이나 예쁘고 아름답다,
이제 꽃신을 신은 소녀는 이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꽃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것 처럼,,
한 여인이 소원을 담은 메모지를 새끼줄에 매달고 있다,
새해 소원을 글씨로 써서 어딘가 절대권력을 갖인자 에게 부탁하는 일은 의미있는 일이다,
이태리 로마를 여행하는 관광객 대부분은 <트레비 분수>에 가고싶어 한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에 올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트레비분수 옆에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 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계단을 걸어 내려왔던 스페인광장이 있다,
스페인 광장은 스땅달, 발자크, 바그너, 리스트, 브라우닝,등 당대의 쟁쟁한 예술가들이
몰려 들었던 명소 이기도 하다,
<트레비> 라는 말은 원래 "삼거리" 라는 뜻을 갖이고 있으며 실제로 이곳에서 길이 세갈래로 나뉜다,
트레비 분수는 1792년 교황 크레멘스 12세가 주최한 분수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작품으로
니콜라 사비노가 설계 하였으며 바다의 신 넵튠과 트리톤이 힘차게 약동하는 형상으로 만들어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