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계사
화계사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 북한산 자락에있는 사찰입니다.
한때 벽안의 <현각스님>이 계셨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조계사의 말사로 1522년(중종17) 신월이 창건했고,
1618년(광해군10) 화재로 전소되자 흥덕대군의 시주로
도월이 중창 하였습니다.
그뒤 건물이 많이 퇴락하자 1866년(고종3) 용선과 범운이
흥선대원군의 시주를받아 중창했으며 이후로도 몇차례 중수하였습니다.
현각스님은 독일계 미국인으로 카톨릭 집안 태생 입니다.
카톨릭계 사립고등학교를 다니며 영적 방황을 격었고
결국 예일대에 입학해 철학과 문학을 전공 했습니다.
이때 쇼펜하우어와 낭만파 시인들에 심취하였습니다.
1989년 하버드 대학원 입학허가서를 받고 학비를 벌기위해
월스리트 법률사무소에서 일했는데 대표적인 물질주의 사회인
월스트리트계의 삶에 절망을 느끼고 자살을 결심
브루클린 다리에 투신하려 하는데 우연히 만난
흑인 거지를 통해 새로운 삶을 결심합니다.
하버드에 입학해 비교철학을 공부하던중 당시 일본인 지도교수가
숭산스님의 하버드 강연에 참석할것을 권유하면서
한국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어 계룡산 신원사에서 90일 동안거를 마치고
귀국 학업을 계속했으나 결국 1992년 수계식을 받고 정식으로 출가하게 됩니다.
수계식을 한장소는 중국의 남화사 입니다.
한국에서는 90년대후반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라는 책을 저술하였고
tv등에 출연하여 대중 설법을 통하여 유명해 젖습니다.
그후 결국 숭산큰 스님계신 화계사로 오게 됩니다.
그는 화계사에서 국제선원장을 맡아 숭산스님의 뒤를 이어 해외포교에 힘쓰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한국을떠나 유럽에서 포교와 수행 정진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저 있습니다.
현각스님
화계사 전경
화계사 대웅전 앞뜰의 연등
화계사는 1933년 조선 어학회 주관으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위해 이희승, 최현배등
국문학자 9명이 기거하며 집필한 곳이며,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양옆에 관세음보살 과
대세지보살 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고종7년(1870)에 새로 지었습니다.
조실스님이 거처 하시는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