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서루
소재지 / 강원도 삼척시 죽서루길 44 (성내동)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 오십천변의 죽서루.
보물 제213호로 지정된 죽서루는 서기 1274년 고려 충렬왕원년 이승휴가 창건하고
1403년 태종 3년에 부사 김효손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죽서루 동쪽에 죽장사라고 부르는 절이 있었고 죽죽선이라 부르는 기생집이
동편에 있다하여 죽서루라 이름하였다.
두타산 푸른숲과 오십천 냇물이 굽이굽이 휘돌아 소를 이루고
천길절벽에 기암괴석이 총총한 그 위에 날듯한 누각을 지었다.
석양에 지는해도 흰구름 타고가다 머문다는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누각의 -제일계정 - 은 1662년 부사 허목의 글씨요 .
- 관동제일루 - 는 1711년 부사 이성조의 글씨이고
- 해선유희지소 - 는 이규헌의 휘호이다,
이곳에는 숙종대왕의 어제시를 비롯하여 이율곡 선생의 시도 게시되어있다.
죽서루의 특징은 하부 17 기둥의 길이가 각각 다르고
천연바위위에 기둥을 세웠다는 점이다.
2020, 5, 26, 촬영,
죽서루
보물 제213호. 정면 7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삼척시의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데,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가 창건하였고, 1403년(태종 3) 삼척부사 김효손(金孝孫)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누각의 전면에 게시한 "죽서루"와 "관동 제1루" 현판은 숙종 41년 부사 이성조의 글씨이고,
누각 내에 게시된 "제일계정" 현판은 현종 3년(1662) 부사 허목의 글씨이며,
"해선유희지소"는 헌종 3년(1837) 부사 이규헌의 글씨이다
이 누각에는 이이(李珥)를 비롯한 여러 명사들의 시가 붙여져 있는데,
현재의 크기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지만,
본래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좌우 각 1칸에 놓인
공포(栱包)의 모습이 다르고, 또 내부 천장에 당초 측면 밖으로 나와 있던 도리의
뺄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십천에서 바라본 죽서루 전경
죽서루 누각 좌측의 기암괴석
죽서루 누각에 걸려있는 각종 시와 글들
- 해선유희지소 - 는 이규헌의 휘호이다,
죽서루에 올라
가파른 절벽 백척 낭떨어지 위에 세워진 죽서루,
꽃 피고 꽃 지기를 거듭했으니 몇해나 되었는가,
삼천이나 되는 화랑도들은 바람이나 구름처럼 흩어젔으니,
오십천 맑은 물과 함께 세월이 흘렀다네,
쇠뿔로된 화각소리에 아침저녁 한이 서려있어,
만리밖에 물안개 자욱하여 예나 지금이나 수심이 가득하도다,
임금님의 은총을 입고있어 마땅히 보답해야 할것이로데,
때묻은 관(벼슬)이 랑벽 걸어두고 갈매기 백로들과 벗하고 싶구나,
벽계 조규용
중수기
관동팔경의 하나인 죽서루(보물 제213호)는 오십천 푸른물이 감돌아 흘러
수십길 기암절벽에 어울려진 천혜의 단애위에 터를 잡아 장관인데 옛부터
시인 묵객이 다투어 찾아와 시정에 젖었던 유서깊은 곳으로 이 고장 젊은이들의
꿈과 낭만이 충만한 이상적 역사의 현장으로서 찾는이의 마음을 설레게한다,
이토록 자랑스러운 관동의 제1루로 만인의 사랑을 받을수 있게된것은 1980년
당시 최규하 대통령께서 취임직후 경내확장을 지시함에 따라 1981년 10월 18일부터
1982년 12월 4일까지 이억일백만원을 들여 경내면적을 3,813평으로 확장하고
누각개수 화장실신축 평삼문개축 담장설치등 대대적으로 중수함으로서
독특한 건축양식을 자랑하는 누각과 수려한 주변환경은 세계적인 명소로
불멸의 문화유산으로 남게되었다, 늦게나마 최규하 대통령께서 배려해준 은혜에
감사하는 삼척시민의 뜻을 모아 이 중수기를 쓴다,
1991, 12, 20, 삼척시장 김광용, 일죽 홍태의 서각
숙종대왕의 어제시
종암포토클럽 회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