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키크룸로프 에서
에곤 실레를 만나다
Cesky Krumlov
Republic of Czech
체코하면 나의 머리속에 맨 먼저 떠 오르는것은 음악가 스메타나와
몰다우강,, 그리고 수크트리오, 바츨라프 노이만이 지휘하는
체코필하모니오케스트라, 그 다음이 카를교, 천문학시계탑 옥상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성 비투스 대성당의 아름다운 일몰, 끝없이 이어진 샛노란 유채꽃,
정도 였으나 언제부터인가 여기에 중세의 고성마을 '체스키크룸로프' 가 하나
더해젔다,
체코의 숨겨진 보물 중세마을 '체스키크룸로프'는 1992년에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너무작은 마을 이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저
있지는 않지만 이곳에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함께 20세기 오스트리아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에곤실레' (Egon Schiele)아트센트가 있다.
단순히 중세마을 체스키크룸로프를 보기위하여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자도
많지만 '에곤실레'의 흔적을 따라 이곳을 찾아오는 여행자가 많은것도 사실이다,
미술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2017 우리나라 에서도 상영되었던
영화 '에곤실레'를 보고 에곤 실레라는 화가와 그가 젊은시절을 보냈던
체스키크롬로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내가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를 여행한것은 2016, 4월 이었고 한국에서
영화 에곤실레를 본것은 그로부터 1년후인 2017, 2, 4, 새문안길 흥국생명 지하
시네큐브 광화문 영화관 에서였다, 내가 체스키크룸로프를 찾아 체코를 여행했을때
오스트리아 미술관 기행으로 벨베데레 궁전을 함께 여행했는데 벨베데레궁전
상궁 미술관에서 크림트의 "키스" 와 함께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 의 진품
명화들도 함께 감상 했었다, 나는 유럽여행의 추억을 곰씹으며 여행에서 돌아와
에곤실레에 대한 묘한 매력에 이끌려 그의 발자취를 쫏기 시작했다,
에곤 실레(1890, 6, 12,~ 1918, 10, 31,) 28세 사망
에곤실레(Egon Schiele 1890~1918)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함께 20세기
오스트리아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인체의 왜곡, 독특한 구도와 색채가 특징인
심리적이고 에로틱한 주제의 초상화와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수직적 시점과 뚜렷한
윤곽선, 강렬한 색감이 돋보이는 표현주의적 풍경화 역시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은
예술적으로 새로울 게 없다고 느껴지던 초상화와 자화상, 풍경화 장르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에곤실레는 1890년 오스트리아 동북부 툴른에서 툴른역장인 아버지와
체스키크룸로프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도 철도기술자로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에곤 실레의
스케치북을 불태워 버릴 정도로 아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학창 시절 실레는 부끄럼을 많이타는 내성적 성격이었지만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선생님으로부터 미술 공부를 계속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여동생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 중에는 누드화도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매독균을 갖이고 있었는데 어느날 에곤실레가 밖에서 스케치를 하고 돌아왔을때
그의 아버지는 철도원 제복을 입은채로 반듯히 누워 죽어 있었다, 그때 에곤의 나이
14살때 일이다, 그후 삼촌의 도움으로 1906년 비엔나의 예술공예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전통적인 학풍을 띤 비엔나 미술학교로 진학했다.
1907년 그가 평소 존경했던 구스타프 클림트를 처음 만났다. 유럽 미술계의 변방
이었던 오스트리아에서는 유럽 미술의 흐름을 체감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실레는
클림트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았다. 실레보다 스물여덟 살이 많았던 클림트는 예술적으로
실레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는데 그림 구매, 모델 섭외, 후원자 연결 등 다양한 면에서
에곤실레를 후원해 주었다. 두 사람은 평생 가깝게 지내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1908년 동료 학생들과 함께 처음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이듬해 보수적인 학교 분위기에
반발하여 3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뜻을 같이 하는 학생들과 함께 ‘새로운 예술 그룹’을
만들어 전시 활동을 이어 나갔다. 실레는 인체의 왜곡과 들쭉날쭉한 윤곽선이 돋보이는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1911년 에곤실레는 한때 클림트의 모델이었고, 자신의 그림 모델인 발리 노이즐과
체스키크룸로프로 이주해 블타바강가에 집을 마련하고 동거하며 그림작업을 계속했다,
에곤이 마을의 어린 소녀들을 상대로 누드를 그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문제가 되고
이 사건이 커지면서 법정에 서게되고 미성년자를 유혹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작품은 포르노로 취급되어 압수되었다. 재판에서 미성년자 유혹 및 학대 혐의는
기각되었으나 공공장소에서 에로틱한 그림을 그린것에 대하여는 유죄 판결을 받고
24일간 수감되었다.
결국 에곤실레는 자신이 그린 소중한 그림 한점을 불사르고 풀려나긴 했지만
오명과 불명예로 이 마을을 떠나야 했다, 그후 에곤실레의 예술성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그의 예술성을 기리기 위하여 1993년 그가 살았던
체스키크룸로프에 오스트리아 정부와 체코정부간 협의로 이곳에 에곤실레아트센터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2020, 3, 6, 상록수
사진촬영 / 2016, 4, 29,
망또다리 에서 바라본 중세마을 체스키크룸로프
앞에 흐르는 시냇물이 블타바강의 상류로 이곳이 블타바강의 발원지라 할수있다,
에곤실레는 1914년 빈으로 돌아와 중산층 집안의 딸인 에디스 함스와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동거 중이던 발리 노이즐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발리 노이즐은
에곤의 결혼 소식을 듣자마자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않았다.
〈죽음의 여인〉은 발리 노이즐이 떠난 슬픔과 분노를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해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졌는데 실레는 결혼 후 나흘 뒤에 징집되어 체코 프라하에
주둔한 군대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뛰어난 재능을 알아본 상관 덕분에 창고를 작업실로
쓰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복무 중에도 왕성한 전시 활동을 한 그는 취리히, 프라하,
드레스덴 등지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1917년 빈으로 돌아와 클림트와 함께 전시 공간이 부족했던 오스트리아 화가들을
위한 미술관을 설립했다. 1918년 2월 그의 예술적 아버지였던 클림트가 사망했다.
3월에는 빈 분리파의 연례 전시회에서 에곤 실레의 특별 전시가 열렸는데 이 전시회는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해 10월 임신 6개월이던 아내가 유럽에서만 2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에
걸려 죽었고, 그로부터 3일 후 에곤실레 역시 28살 짧은 생을 마감했다.
에곤실레의 그림은 초창기에는 클림트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클림트에서 벗어나
독특한 구도로 왜곡된 신체와 활력이 넘치는 윤곽선이 특징인 자신의 스타일을 찾았다.
이런 특징은 초기 표현주의에 영향을 주었고, 멀리는 프랜시스 베이컨과
장-미셸 바스키아에까지도 이어졌다.
체스키크룸로프성
'체스키크룸로프성' 의 '체스키'는 체코어로 '보헤미안' 이란 뜻을
갖이고 있다,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 돌아 다니는 사람을
'짚시' 라 하는데 '체스키'가 그런뜻이다,
체스키크룸로프성 중세마을을 에워싸고 블타바강이 휘돌아 흐르고 있으니
우리나라로 치면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안동 하회마을과
비교될수 있는 마을이다,
체스키크룸로프성은 귀족 이었던 크룸로프경에 의해 1250년에 지어진
성으로 그의 사후에는 로젠베르크가로 소유가 넘어갔다,
1602년 이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루돌프2세가 구입해 왕가의 소유가 되었다,
성은 크게 성 박물관, 탑, 정원, 세 구역으로 나뉜다,
중세마을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체스키크룸로프는
마치 중세로 돌아가 시간 여행을 하는 착각이 들게 한다,
아기자기한 골목들을 돌아 다니다 보면 기념품가게에 들러
나도 모르게 기념품 하나를 집게 만든다,
체스키크룸로프성에 가기 위해서는 "블타바강" 을 건너야 한다,
블타바강(체코어 Vltava, 독일어 Moldau)은 체코에서 가장 긴 강으로
그 길이는 430km에 이른다, 슈마바 산맥에서 발원하여 체스키크룸로프,
프라하를 거처 몔니크에서 엘베강과 합류한다,
바로 이곳 체스키크룸로프가 블타바강의 발원지라 할수있다,
강은 작은 시냇물로 시작하여 점점 수량이 풍부하고 강폭이 커저
프라하에 이르러 도도한 큰 물줄기의 강이된다,
체코출신 작곡가 스메타나(Bedřich Smetana) 는 교향시 "나의 조국" 을 작곡했는데
그 두번째 곡이 바로 "블타바"(Vltava / 독일어권에서는 '디 몰다우' 라 부른다) 이다,
나는 평소 체코출신 "라파엘 쿠벨릭" 이 지휘하여 녹음한 보스턴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도이치 그라모폰 음반으로 "디 몰다우" 를 자주 듣고 있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곡이다,
도입부는 찰랑 거리는 작은 시냇물이 햇빛에 반짝이며 재잘 거리며 흐르다가
점점 강물은 많아지고 강폭이 넓어 지면서 강은 거센 물결로 도도히 흘러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SMETANA, ~"Ma Vlast"~ Rafael Kubelik, Boston Symphony Orchestra,
2016, 4, 29, 촬영,
스메타나 <나의 조국> LP음반
라피엘 쿠벨릭 지휘 /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러 연주 / 도이치 그라모폰
1874~1979년 작. 6곡으로 구성되어 있는 교향시로 스메타나 나이 50세에
작곡되었다, 작곡자인 스메타나의 조국인 체코의 역사와 자연을 소재로
한 것으로서, 그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다.
제1곡 <뷔세흐라드 Vysehrad>, 제2곡 <블타바 Vltava, 독일어권발음 Moldau>,
제3곡 <사르카 Sarka>, 제4곡 <체히의 목장과 숲속에서 Zeskych luhv a hjuv>,
제5곡 <타보르 Tbor>, 제6번 <블라니크 Blanik>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서도 특히 제2곡 블타바, 독일어권 발음으로 <디 몰다우>(몰다우강)이
가장 유명하다. 블타바강 또는 몰다우강은 체코에서 가장 긴 강으로 그 길이는
430 km에 이른다. 슈마바 산맥에서 발원하여 체스키크룸로프, 체스케부데요비체,
프라하를 거쳐 몔니크에서 엘베강과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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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또다리 에서 어안렌즈로 잡은 체스키크룸로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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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실레 / 꽈리 열매가있는 자화상 1912
나무에 유화와 페인트 32.2 x 39.8
에곤 실레(1890, 6, 12,~ 1918, 10, 31,) 28세 사망
그림속 가느다란 가지는 한쪽으로 기울어저 있다,에곤 실레의 얼굴과 어깨도
같은 방향으로 갸우뚱하다, 에곤 실레는 이런 자세를 좋아해서 사진 속에서도
같은 모습을하고 있는 사진들이 있다, 시든 나뭇잎이 그의 창백하고 피곤한듯한
얼굴빛과 닮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간 꽃잎은 부릅뜬 눈과 굳게 다문입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는 쓰러질것 같으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굳건한
자신을 표현하려 한것 같기도 하다,
천재는 단명 한가보다,
한국문학사에서 천재로 불리는 이상 27살, 박인환 30살, 전혜린 31살,
그리고 슈베르트 31살, 모차르트 35살, 모딜리아니 36살, 고흐 37세,
모두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에곤 실레 / 자화상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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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 세소녀 1911
'세소녀'는 에곤 실레의 독창적인 화풍을 엿볼수있는작품이다,
에로틱한 인물묘사, 독특한 색상, 거칠고 뒤틀린듯한 터치는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그 만의독특한 화법이라 할수 있다,
이 그림은 빈 근교 노이렝바흐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그린 그림인데
모델은 모두 동네마을의 어린 소녀들이다,
에곤 실레 / 발리 노이즐의 초상 1912
에곤 실레는 1911년 그의 그림 모델 이기도한 '발리 노이즐'과 이곳 체스키크룸로프로
이주하여 이곳 강가에 집을 마련하고 함께 동거하며 그림을 그리며 평화롭게 살았다,
에곤 실레는 에디트 함스와 결혼함으로써 발리 노이즐과 함께한 4년 동거를 청산하고
1915년 결국 헤어지게 된다, 한편 노이즐은 에곤과 헤어진후 전쟁중 적십자 간호사가
되어 근무하다 2년이 지난 1917년 성탄절날 당시의 지명 달마티아, 현재의 크로아티아
육군병원에서 1917년 성홍열로 죽음을 맞는다,
그림 속에서 발리는 과장되게 크고 슬프게 그려진 푸른눈을 하고 있다, 나중에
에곤 실레와 헤어저야 한다는 불길한 미래를 예감하고 있는듯한 표정이다,
에곤 실레에게 영향을 끼친 여자들을 꼽으라면 4명의 여자를 들수 있다,
누이동생으로 모델이되어준 게이티 실레, 무명배우출신 모아 만두,
발리 노이즐, 에곤 실레와 결혼한 부유한 집안의 딸 에디트 함스(Edith Harms가 그들이다,
에디트 함스와 결혼한 뒤로는, 새 아내의 대단히 민감한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그는 보다
자연스런 조형언어를 차용하였고, 정밀하고 정확한 드로잉을 구사해나갔다,
에곤 실레 / Portrait of a Woman
에곤 실레 / 앉아있는 에디스 실레 1915
에곤 실레를 사랑 한다면 한번쯤은 체스키크룸로프
김해선 지음 / 이담북스 출판 / 2019, 3, 8, 초판인쇄, 발행
나는 김해선 지음 <에곤 실레를 사랑 한다면 한번쯤은 체스키크룸로프>라는 책이
출판 되었다는 정보를 얻고 곧바로 책을 주문해 손에쥐고 단숨에 읽을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읽지 않기로 마음으로 작정하고 아주 천천히 144 페이지밖에 않되는 이 얇은 책을
삼일에 걸처 중요한 부분은 붉은색 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사실 나에게 '체스키크룸로프'의 의미는 체코출신의 위대한 작곡가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제2곡 "블타바"(Vltava, 디 몰다우)에 등장하는 블타바강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스페인의 한 미술관에서 에곤 실레의 그림 한점을 보고 그 강렬하고 애틋했던
주홍빛을 쫏아 여행을 떠난다, 관속에 담겨있는 메마른 소녀의 입술과 작은 가슴에
살아있는 주홍빛,, 그 알수없는 야릇한 감각에 이끌려 체코의 작은 중세 도시
체스키크룸로프로 에곤 실레의 자취를 따라 가게 되는데 이 책은 그녀가 약 40여일을
체스키크룸로프에 머무르며 쓴 자전적 일기이자 에곤실레의 발자취를 따라 나선
기행문 이기도 하다,
사실 체스키크룸로프의 에곤 실레 아트센터에는 그의 그림들이 많지는 않다고 한다.
그의 그림 대부분은 앞서 말한 레오폴드 미술관에 자리하고 있지만 아트센터에는
그의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들과 자료들이 있고 마을에는 그의 작업실과
그가 발리 노이즐과 함께 했던 시간의 흔적들이 남아있으니 에곤 실레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상징성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체스키크룸로프라는 중세의 작은 고성에 대하여, 또는 블타바 강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오직 에곤 실레의 생애의 실오라기같은 작은 한자락
이라도 놓치면 큰 일이라도 날듯 저자는 끈질긴 예리한 감성으로 형사 콜롬보가
되어 에곤의 흔적을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에곤이 살았음직한 집을 찾아
낸다,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썻다,
~ 에곤 실레의 집은 들어갈수 없게 굳게 잠겨있지만 지붕 모양으로 봐서는 다락이
있어 보인다, 집을 들러싼 층계를 따라 지붕 근처로 올라가면 지붕속에 있는
다락에서, 지붕위의 굴뚝에서도 강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에곤 실레의 집 근처에는
집이 없다, 그저 마른 풀들이 덮혀 있을 뿐이다, 그림에 몰두 하기위해 일부러
한적한 곳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막다름 끝에 위치한 듯한 집이다,
에곤의 집 외에는 집도, 길도 없는것이다,~
유럽의 작은 미술관
최상운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8,20, 초판 인쇄
그림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책이 출판되자마자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이책을 사서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은 빨간펜으로 밑줄을 그어 몇번을 다시 읽었다, 내가 미처
알지못하고 가 보지 못했던 미술관도 여럿이 있었다,
이 책 맨 처음에 오스트아 빈의 <벨베데레 미술관>과 두번째로 오스트리아 빈의
<레오폴트 미술관>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곳에 소장 전시하고 있는 에곤 실레의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다,
<벨베데레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에곤실레의 그림,
죽음과 소녀 / 어머니와 두아이 / 가족(쪼그려 앉은 커플)
<레오폴트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는 에곤 실레의 그림,
초승달 모양의 거리 / 땅꽈리가 있는 자화상,
발리 노이즐의 초상화 / 추기경과 수녀(애무),
영화 <에곤실레> 포스터
<씨네큐브 광화문> 종로구 새문안길 68, 흥국생명 지하2층, tel 02-2002-7770)
2017, 2월에 상영
망토다리에서 바라본 중세의 고성마을 '체스키크룸로프'
블타바강은 체스키크룸로프성을 휘감아 돌고있다,
블타바 강물은 아주 깨끗한 1급수 인데 보기에 검붉은 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강바닥에 깔려있는 검고 붉은색의 돌들 때문이라 한다,
체스키크룸로프성내의 건물들은 18세기 이후에는 증축을 불허했다고 하니
건물들은 18세기 이전에 지어진 집들이다, 지붕은 붉은색톤의 지붕들로 되어있다,
망토다리
관광객들은 망토다리 아래 아치형 터널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가고 나간다
망토다리와 성 진출입 아치형 터널
블타바강을 사이에 두고 이발사의 다리가 놓여있다
체스키크룸로프 성안에서 블타바강을 건너려면 목조 다리인
"이발사의 다리" 를 건너야 하는데 이 다리에는 헝가리의 왕 루돌프2세와
이발사 딸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가슴 아픈 슬픈 사연이 있다,
"이발사의다리" 에서 한 거리악사가 태엽을 돌려 노래가 연주되는 오르골로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그의 오래된 낡은 중절모 안에는 사람들이 던저준 동전 몇잎이 들어 있는것이 보였다,
관광지 어딜가나 한국인 관광객들은 긴 막대가 달린 핸드폰으로 자기사진 촬영에 비쁘다
블타바강변의 작은 노천카페들
기념품 가게
이 인형가게 앞에서 손벽을 치자 맨 좌측 인형이 입을 실룩 거리며 꽥꽥 소리를 냈다,
체스키크룸로프
체스키크룸로프
체스키크룸로프
체스키크룸로프
망토다리 아래 외부로 출입 할수있는 작은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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