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만난 이어령 교수는 ’정월 초하루에, 그 좋은 새해 첫날에 죽음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 나라가 있다.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렇겠나. 우리가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더욱 농밀해지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1/08/2c57da7f-9c54-4e62-be90-66e845ac81c8.jpg)
[출처: 중앙일보] “암 걸리고 나니 오늘 하루가 전부 꽃 예쁜 줄 알겠다”
이어령의 신년 메시지
항암·방사선치료 없이 정기 검진
육체도 내 일부, 친구로 지낼 뿐
삶은 본래 끝없는 헤어짐의 연속
탯줄 끊는 순간부터 엄마와 이별
7년 전 먼저 떠난 딸이 남긴 비전
생과 사는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
여태껏 써온 글 모두 ‘죽음의 연습’
내 생각 모은 유언 같은 책 내고파
- 질의 :건강하신가.
- 응답 :“우리는 사실 태어날 때부터 투병한다. 4㎝도 안 되는 좁은 산도(産道)를 필사적으로 나오지 않나.
- 그때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그건 목숨을 건 모험을 하는 거다. 그렇게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또 이별을 한다.”
응답 :“태중에서는 엄마와 한 몸으로 존재한다. 탯줄을 끊으면서 엄마와 이별해야 한다. 그러니까 만남이 먼저인가,
이별이 먼저인가. 그렇다. 이별이 먼저다. 그러니 삶의 시작은 ‘헤어짐’에서 비롯된다. 삶은 끝없는 헤어짐의 연속이다.”
이 교수는 문득 여섯 살 때 기억을 떠올렸다. 잊히지 않는 순간이라고 했다. “나는 굴렁쇠를 굴리며 보리밭 길을 가고 있었다.
- 질의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다.
- 응답 :“그렇다. 내가 병을 가진 걸 정식으로, 제대로 이야기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부분적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 의사가 내게 ‘암입니다’라고 했을 때 ‘철렁’하는 느낌은 있었다. 그래도 경천동지할 소식은 아니었다.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 대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암이야. 어떻게 할까?’ 여섯 살 때부터 지금껏 글을 써온 게 전부 ‘죽음의 연습’이었다.
- ‘나는 안 죽는다’는 생각을 할 때 ‘너 죽어’ 이러면 충격을 받는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 사람에게 ‘너 죽어’ 이런다고 두려울 게 뭐가 있겠나.”
이 교수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과일 속에 씨가 있듯이, 생명 속에는 죽음도 함께 있다. 보라. 손바닥과 손등, 둘을 어떻게 떼놓겠나.
이 교수는 방사선 치료도, 항암 치료도 받지 않는다. 석 달 혹은 여섯 달마다 병원에 가서 건강 체크만 할 뿐이다.
- 질의 :많은 사람이 죽음을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일로 생각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한다.
- 응답 :“영원히 살면 괜찮다. 그런데 누구나 죽게 돼 있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는 삶이 중요하다.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정월 초하루에,
- 그 좋은 새해 첫날에 왜 죽음에 대한 노래를 부르겠나. 죽음을 염두에 둘 때 우리의 삶이 더 농밀해지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 내 삶이 가장 농밀한 시기가 언제인지 아나. 요즘이다.”
응답 :“사람 만날 때도 그 사람을 내일 만날 수 있다, 모레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농밀하지 않다. 그런데 제자들 이렇게 보면 또 만날 수
있을까. 계절이 바뀌고 눈이 내리면 내년에 또 볼 수 있을까. 저 꽃을 또 볼 수 있을까. 그럴 때 비로소 꽃이 보이고, 금방 녹아 없어질
눈들이 내 가슴으로 들어온다. ‘너는 캔서(암)야. 너에게는 내일이 없어. 너에게는 오늘이 전부야’라는 걸 알았을 때 역설적으로 말해서
가장 농밀하게 사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나쁜 일만은 없다.”
이 교수는 7년 전에 소천한 딸(이민아 목사) 이야기를 꺼냈다. 이 목사도 생전에 암 통보를 받았다.
- 질의 ;생각하시는 비전이 뭔가.
- 응답 :“우선 비전의 바탕, 내 삶을 그리는 바탕을 말하고 싶다. 먼저 ‘인법지(人法地)’다. 인간은 땅을 따라야 한다. 땅이 없으면
-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어디에 사나. 지구에 살지 않나. 다음은 ‘지법천(地法天)’이다. 땅은 하늘을 따라야 한다.
- 땅에 하늘이 없으면 못 산다. 해도 있고, 달도 있고, 별자리도 있으니까. 그럼 그게 전부냐. 아니다.
- ‘천법도(天法道)’. 하늘은 도(道)를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우주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그럼 도(道)가 끝인가? 아니다.
- ‘도법자연(道法自然)’. 도(道)는 자연을 따라야 한다.”
질의 :마지막의 ‘자연’이란.
응답 :“우리는 그동안 ‘인법지’할 때 ‘지(地)’가 자연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게 아니다. 자연은 스스로 된 것이다. 자연스러움.
이 세상에 스스로 된 게 있나. 의존하지 않는 게 있나. 의지하는 뭔가가 없다면 그 자신도 없어진다. 그러니 ‘절대’가 아니다.”
- 응답 :“누군가 예수님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의 아들인가?’ 그러자 예수는 ‘예스, 에고 에이미(ego eimi·그리스어)’,
- 즉 ‘예스, 아이 엠(Yes, I am)’이라고 답했다. ‘아이 엠(I am)’이 뭔가. ‘나는 나이다’ ‘나는 스스로 있다’는 말이다.
- 그건 무엇에 의지해서, 무엇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있는 거다. 스스로 있는 것은 외부의 변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 그게 ‘자연’이다. 그게 ‘신(神)’이다.”
- 응답 :"우리는 ‘너 예수교 믿어?’하고 묻는다. 그건 교(종교)를 믿느냐고 묻는 거다. ‘너 신을 믿어?’ 하는 물음과는 다른 이야기다.
- 교를 믿는 것과 신을 믿는 것은 다르다. 기독교든, 불교든, 도교든 모든 종교의 궁극에는 ‘저절로 굴러가는 바퀴’와도 같은 게 있다.
- 스스로 움직이는 절대의 존재다. 인간은 단 1초도 무엇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자율자동차라는 말,
-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호모 데우스’ 같은 말처럼 공허하게 들리는 것도 없다.”
- 응답 :"인간이 죽기 직전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유언이다. 나의 유산이라면 땅이나 돈이 아니다. 머리와 가슴에 묻어두었던 생각이다.
- 내게 남은 시간 동안 유언 같은 책을 완성하고 싶다.”
- 응답 :"다들 ‘돼지’라고 하면 살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돼지 다리가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 돼지에 개 정도의 다리만 달아줘도 비대해 보이지 않는다. 다리가 짧으니까 몸집이 뚱보로 보인다. 시점을 바꿔 보면 대상이 달라진다.
- 이미 일어난 과거를 알려면 검색하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려면 사색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하라. 검색은 컴퓨터 기술로,
- 사색은 명상으로, 탐색은 모험심으로 한다. 이 삼색을 통합할 때 젊음의 삶은 변한다.”
질의 :그럼 ‘스스로 된 것’은 뭔가.
질의 :이어령의 삶,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질의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출처: 중앙일보] “암 걸리고 나니 오늘 하루가 전부 꽃 예쁜 줄 알겠다” 2019, 1, 8,(화)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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