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휘원/숭인원의 가을
永徽園 / 崇仁園
이효석은 <낙엽을 태우며> 라는 수필 에서,,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라고 했다,
이제 낙엽을 긇어모아 태울때가 왔다,
영휘원, 숭인원을 찾아 갔을때 아저씨들이
열심히 낙엽을 갈키로 긇어모아 자루에 담고 있었다,
그냥 떨어진채로 수북히 한동안 놔 두어도 좋으련,,
선홍빛 선혈처럼 곱게물든 단풍이 원내를 붉게
물들이고 바람이 불때마다 낙엽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가을은 깊을대로 깊어 있었다,
2017, 11, 7, 촬영,
재 실
영휘원
영휘원은 사적 제361호로 동대문구 홍릉로에 있으며
조선 제 26대 고종의 후궁이며 의민황태자의 생모인
순헌황귀비(1854-1911) 엄씨의 원(園)이다,
원(園) 이란 왕의 사친 또는 왕세자와 그 빈의 무덤을 일컫는 말이다,
순헌귀비는 의민황태자 영왕의 어머니로 명성황후가 일본인에 의해
시해된후 고종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조선총독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황태자로 책봉된 의민황태자는 1907년
교육 이라는 미명하에 인질로 일본에 강제로 잡혀 갔다가 1963년 귀국
하였으나 1970년 병으로 돌아 가셨다,
신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귀비는 양정의숙, 진명여학교를 설립 하였고
숙명여학교의 설립에 기부하여 근대 사학 발전에 크게 공헌 하였다,
숭인원
숭인원은 의민황태자 이은의 맏아들인 이진(李晉)의 묘소이다,
이진은 1921년 8월 18일 태어나 1922년 5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순종황제는 그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여 특별히 원(園)으로 조성 하였다,
"어느날 문득 늙고 쇠락해 이제는 더이상 떼어내 팔수 있는것이 바닥나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을때 그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인간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자원으로 분류되어 살아 왔음을,
물성적 교환가치가 소멸되는 순간 시장에서 찌꺼기처럼 폐기 되었음을,
그래서 "어르신" 들은 누구랄것 없이 고독하고 쓸쓸하다,
과거에 등가적 교환가치를 풍성하게 지녔던 이들은 모든것이 떠나간 텅빈 뒷자리를 감당해 내지 못하고 있다,
노인들의 구조적 불행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그들은 갖가지 사연을 안고 탑골공원과 종묘시민공원으로 몰려든다,
동병상련이라고 할까,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이웃을 보는것 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사람이 모이는곳에는 먹이사슬이 생기는법, 여기에도 예외없이 노인들의 주머니를 털려는 이들이 등에처럼 붙어있다,
바둑과 장기같은것을 대여하는자, 시국강연자, 작은 음식점과 소주방 운영자, 커피와 박카스를 파는 아줌마들이 그들이다,
이 작은 공간안에도 사회조직이 움직이는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을 "먹는 자" 와 "먹히는 자" 두 그룹으로 나누어
본다면 우리 "어르신" 들은 젊었을 때는 자본주의자 고용주에게, 지금은 이런 등에들에게, 먹잇감을 제공해주며
석양처럼 소멸되어가고 있다,"
오근재 지음 "퇴적공간" / 저자의 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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