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정사
경기도 용인에 한해 약 30만명의 외국 관광객이 찾아 오는절이 있다,
절 입구에 들어서면 돌탑위에 놓인 8m높이의 거대한 부처님 머리상,
황금빛 불두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절 이름도 특이한 <와우정사>(臥牛精舍)이다,
경내를 둘러보면 둘러 볼수록 이국적인 절이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동남아식 불상과 코끼리 조각상,
독특한 양식의 돌탑들이 이곳 저곳에 즐비 하다,
절안을 돌아보다 보면 태국인들을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만날수
있는데 그들은 자연스럽게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고 있다,
와우정사는 1970년 창건 하였다,
한해 약 3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와우정사를 찾아 오는데 그중
약 20만명이 태국인이다, 태국인 외에도 스리랑카, 미얀마, 라오스,
인도네시아, 중국인들도 있다,
와우정사를 창건한 스님은 해곡(海谷) 스님이다,
와우정사 란 "해탈한 부처님이 계신절" 이라는 뜻이다,
함경북도 나진 출신의 해곡스님은 해방 직후 월남해 서울을 거처
부산 초량에서 살았다, 당시 아버지가 건어물, 설탕, 간장 대리점을 해서
집안은 넉넉한 편이었다,
해곡스님이 어렸을때 몸이 너무나 허약하여 명이 짧을것을 걱정한 집안에서
해곡스님 나이 9살때 전북 완주 위봉사에 어린 나이에 출가를 시켰다,
당시에는 몸이 아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이들을 부처님 은덕으로
살리기 위하여 절에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당시 해곡스님의 고모가 스님 이었는데 마침 묵담 큰스님을 잘알고 있던 터라
묵담스님의 제자인 충담스님이 주지로 있던 위봉사에 해곡스님을 맡겼던 것이다,
해곡스님은 불교 교육기관인 해동중,고교를 거처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1960년 KBS에 입사한 해곡스님은 방송 연출, 촬영, 제작, 연기, 노래, 시나리오
쓰는법 등을 익혔다, 승려이자 방송국 직원으로 사는 이중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1998년 정년퇴직후 에도 2007년까지 촉탁으로 방송국에서 근무 했으며
60년 중반부터 30여년간 조계종 기획위원으로도 일했다,
1970년 건설이 시작된 와우정사는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공사중이다,
해곡스님은 방송국에서 완전히 은퇴한 2007년 이후에는 와우정사 짖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와우정사에는 태국왕실이 기증한 10t짜리 금동불상(높이 5,4m)이 있는데
법당에 들어가지 않아 스테인드 글라스로 지붕과 벽을 만들어 모셨고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연꽃을 그려 넣었다,
또 와우정사에는 누워계신 부처님, 와불상이 있는데 길이 12m, 높이 3m로
인도네시아 에서 가져온 향나무로 만들었다,
누워계신 부처님은 "모든 번뇌가 사라져 완전히 해탈한 모습" 을 상징한다,
1978년 개봉한 영화 <관세음보살>은 원작자가 해곡스님이며
신봉승씨가 극본을 쓰고 황해가 주연을 맡은 영화 였다,
이 영화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모티브삼아 한 스님이 수행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 였다,
대한불교 열반종의 총본산인 와우정사는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호국사찰임을 자임하고 있다,
2017, 4, 27, 촬영,
와우정사 전경
황금불두상
높이 8m의 부처님 머리상
와불상
인도네시아에서 가져온 향나무로 만든 누워있는 부처님 상으로 길이 12m, 높이 3m 이다,
금동불상
태국왕실에서 기증한 무게 10t짜리 금동불상으로 높이 5m40cm이며
법당안에 들어가지 않아 스테인드 글라스로 지붕과 벽을 만들어 모셨다,
종무소
가족대표 박명서 작가와 함께
가끔씩 촬영 여행을 함께하는 박명서 작가님은 연세대 상경대학을 나오신 금융인으로
은행 중역으로 퇴직 하신 뱅커로 골프에서 사진으로,, 최근에는 사진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와우정사 앞 "좋은예감" 식당 031-333-1000
촬영후 이곳에서 점심식사
점심식사 메뉴는 "해물소고기온반"
점심식사를 하면서 식당 내부를 둘러보니 화가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나부상 등
그림과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분위가 좋은 운치있는 식당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