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0 주기
정릉 신덕왕후 강씨 기신제
1, 일 시 / 2016, 9, 23, (금) 정오
2, 장 소 / 서울 성북구 정릉,
3, 주 관 /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정릉 / 貞陵
조선 제1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
신덕왕후는 상산부원군 강윤성의 딸로 태조의 계비이다,
신덕왕후의 가문은 고려의 권문세가로 태조 이성계가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정치 영역을 넓혀 조선을 건국하는데 중요한 역활을 담당 했다,
태조의 원비는 신의왕후 였으나 태조 즉위 전인 1391년(고려공민왕 3)
세상을 떳기 때문에 신덕왕후가 조선 최초의 왕비로 책봉 되었다,
신덕왕후는 태조와 원비 신의왕후 사이의 장성한 여섯 아들을 제치고
자신의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 하는데 성공 했을 정도로 정치적 역량이
뛰어난 인물이다,
태조와의 사이에서 방번, 방석, 두 아들과 경순공주를 두었으며
태조는 신덕왕후를 극진히 사랑했다 전한다,
1396년(태조5) 병환으로 승하 했으며 태조는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위해
흥천사를 세웠다,
신덕왕후가 세상을 뜨자 태조는 왕의 위엄도 생각하지 않고 통곡 했으며
상복을 입은채 안암동으로 행주로 직접 능 자리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신덕왕후가 위독 할때에는 내전에 승려 50여명을 모아 불공을 드리기도 했다,
말년에는 사흘이 멀다하고 흥천사를 찾아 갔으며 심지어 "백관이 반열을 정돈
했는데 조회를 보지 않고 흥천사로 거동 했다" 라고 태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태조에게 이렇게 극진한 사랑을 받았으나 아버지 태조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태종이 신덕왕후를 좋아할리 없었다,
태종은 1409년(태종9) 2월 신덕왕후의 정릉을 정동에서 지금의 성북구 정릉
자리로 천장하고 그 석물은 광통교를 돌다리로 짓는데 사용했으며 신덕왕후가
세상을 뜬지 20년이 지나서 새삼 "강씨는 내게 조금도 은의가 없다" 라고 모질게
선언까지 하였다,
2016, 9, 23, 촬영,
봉동을 앞세우고 제관 일행이 재실을 떠나는 모습
제관들이 재실 내삼문을 벗어나 외삼문으로 향하고
제관들이 재실 외삼문을 벗어나 정자각으로 향하고
정자각이 있는 홍살문 가까히 제관들 일행이 다가오고
기신제에 참석한 종친과 내빈 500여명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 전경
정릉봉향회가 소속되어 있는 전주이씨 광평대군파종회 이택종 이사장이 제관들을 소개
정릉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