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석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 (益山 彌勒寺址 石塔) /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이 복원을 마치고 준공 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가봐야
되겠다 마음 먹었지만 이런저련 일로 마루어 오다 요번에 다녀왔다,
내가 석탑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고2때 읽은 현진건의 장편소설 "무영탑"
때문이다, "무영탑" 은 경주 불국사 석가탑의 조영을 둘러싼 백제 석공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소설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내가 석탑을 볼때마다 맨 먼저 보는것은 석탑 처마의 곡선이다, 여인의
하늘거리는 초승달을 빼닮은 저고리 아래곡선을 연상케 하는 미륵사지 석탑
처마의 곡선은 아름다움의 극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미륵사지 석탑 추녀곡선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유흥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제3권 <이루어지지 않은 왕도의꿈> "익산 미륵사터" 편(p219)에 다음과 같이 적고있다,
"미륵사 탑의 세부적인 아름다움의 백미는 추녀의 묘사에 있다, 거의 직선으로 그어가던
반듯한 처마가 추녀에 이르러서는 살포시 반전하는 그 맵시가 여간 고운것이 아니다,"
유흥준교수는 "미륵사의 위용과 몰락" 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소신을 책에 밝히면서
조선왕조 시절 인조때 중추부사를 지낸 이 고장출신 문인 소동명(1590-1673)이 지은 시
<미륵사를 지나며> 라는 한시를 풀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옛날의 크나큰 절 이제는 황폐했네
외로이 피어난 꽃 가련하게 보이도다
기준왕 남하하여 즐겨 놀던 옛터건만
석양에 방초만 무성하구나
옛일이 감회 깊어 가던 걸음 멈추고
서러워 우는 두견 쫏아버렸네
당간지주 망주인 양 헛되이 솟아있고
석양의 구름 아래 저물음도 잊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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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최대의 사찰이었던 미륵사는 7세기 무왕(639년) 때 창건 되었다.
미륵사는 3개의 탑과 금당으로 구성된 3탑 3금당의 독특한 배치 형식인데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해체보수 20년만에 복원을 마치고 금년 2019년
4월 30일 준공식을 갖고 일반에 공개된 석탑은 세 개의 탑 중 서쪽에 위치한
탑이다.
석재 2800여 개를 목탑처럼 짜 맞춘 형태로 백제 목조건축 기법이 반영된
독특한 양식이다. 석탑의 1층 내부는 ‘十’자형 공간이 조성되어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출입이 가능하게 만들어졌다.
2009년 석탑 1층의 기둥돌(심주석) 안에서 사리장엄구와 사리봉영기가 발견
된바 있다, 사리봉영기에 기해년(639년)에 사리를 모시고 절을 세워 무왕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기록이 있어 석탑 건립 연대가 명확해젔다,
미륵사지에는 1990년대 초반에 복원한 "동탑" 과 이번에 보수가 종료된
국보 제11호 서탑이 나란히 섰는데, 두 탑은 보기에 모양새가 현저히 다르다.
9층 동탑이 좌우 대칭인 완성된 형태를 갖추었다면, 서탑은 6층인 데다
한쪽 면은 마치 커다란 벽돌모양의 돌을 대충 쌓아놓은것 처럼 느껴진다.
석탑 복원에 관계했던 연구사의 말에 따르면 석탑이 불완전해 보이는 연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문헌 기록 조사와 해체 과정에서
층수 등 창건 당시 원형을 입증할 수 있는 실체적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확한 원형을 알 수 없다면 복원은 추론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멈춰야 한다는 것이 문화재 보존의 보편적 이념"이라며 "추정에 의한 복원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미륵사지는 금당과 탑을 세 개씩 조성한 삼원식(三院式) 사찰로, 중앙에는 목탑을
두고 서쪽과 동쪽에 석탑을 건립했다. 하지만 서탑은 물론 동탑도 정확히 몇 층이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동탑은 원형 회복을 뜻하는 '복원'이 아닌 창조적 산물에
가깝다고 평가된다.
연구사는 "옛 부재의 물리적 성능은 새로운 석재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복원 범위가 확대되면 옛 부재를 사용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며 옛 부재 활용과
원형 보존 측면에서도 6층을 초과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륵사지 서탑과
동탑은 문화재 수리 역사와 가치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자 문화재 수리 방법에
대한 탐구 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9, 5, 19, 촬영,
국보 제11호 / 미륵사지 서탑
국내에서 가장 크고(9층 높이 추정), 가장 오래된 석탑인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은
지난 1999년 해체보수가 결정된 후 무려 20년 만인 지난 2019년 4월 30일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특히 올해는 석탑이 건립된 지 1380주년이 되는 해라 더 의미가 크다 할수있다,
단일 문화재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랜 시간에 걸쳐 체계적인 수리를 진행한 사례로 꼽힌다.
특히 이번 해체보수는 일제의 잔재를 씻어 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크다 할것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15년, 벼락에 맞아 무너져 내린 미륵사지 석탑을 조선총독부가 시멘트로
대충 덧씌운 채 방치되어 왔었다, 일제강점기에 응급 보수를 했으나 80여 년이 흐르면서 석탑 붕괴
가능성이 제기되자 문화재위원회는 1999년 전격적으로 해체를 결정했고, 2001년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했다. 일제가 사용한 콘크리트 185t을 제거한 뒤 부재를 강화하고 다시 쌓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6년. 이후 석탑을 둘러싼 가설 덧집 해체와 주변 정비를 마무리 하면서 20년 동안 진행된
대역사를 마쳤다
이번에 복원된 석탑의 높이는 14.5m, 너비 12.5m, 사용된 부재는 총 1627개로 무게가
약 1830톤에 이른다. 석탑 1, 2층은 옛 모습 그대로, 3층부터 6층까지는 시멘트를 뜯어내고
원재료의 81%를 사용해 남아있던 모습 그대로 복원해 석탑의 진정성과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
미륵사지 동탑
미륵사지에는 나무로 만든 탑을 가운데 두고 동쪽과 서쪽에 두 개의
돌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에 있는 동탑은 미륵사지
석탑의 발굴 결과를 바탕으로 1990년 초에 복원한 석탑으로 온전한
미륵사지 9층 석탑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는 웅장한 모습이다.
동탑은 자유롭게 내부까지 관람하며 미륵사지 석탑의 구조를 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