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평대군묘역의봄 -1
광평대군 묘역은 서울 수서동에 있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8호이다,
전주이씨 광평대군파(가평부정) 문중은 나의 처가 문중으로 집사람이
범(範)자 항렬이니 광평대군의 17대손이다,
4월, 새 봄이 되면서 묘역에 오얏나무꽃(李花)과 진달래, 목련이 곱게 피었다,
이곳 묘역에는 세종대왕의 5남이신 광평대군과 그의 부인 평산신씨,
광평대군의 외 아드님이신 영순군, 그리고 태조의 7남이신
무안대군 방번의 묘소등 문중 묘 720여기가 있다,
무안대군은 1398년 1차왕자의 난(무인정사)때 18세 나이로 양화도 인근에서 피살 되었다,
광평대군은 세종26년(1444) 20세 되는해에 창진으로 사망하여 지금의 선릉지역에
안장되엇다,
"연려실기술" 에는 "생선을 먹다 가시가 목에 걸려 여러날 앓다 죽었다" 라고 기술 되어있다,
그때 외아들 영순군은 생후 5개월 이었다,
영순군은 남천군 정, 청안군 영, 회원군 쟁 등 3남 1녀를 두었다,
한편 광평대군의 부인 평산 신시는 남편 광평대군이 죽자 마음을 의지할곳이 없어
묘의 인근에 견성암을 세워 광평대군의 원당으로 삼고 조석으로 영혼을 천도하였다,
광평대군의 부인은 비구니가 된 이후에도 토당동(안암동)에 있는
광평대군의 방에 자주 머물렀다,
또한 인근에 있는 토당사를 자주 들러 유생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영순군의 부인 최씨도 영순군이 죽자 비구니가 되어 시어머니와 며느리
두 비구니가 견성암에서 남편의 명복을 빌며 여생을 보냈다,
1498년으로 추정되는 해에 대비정현왕후는 견성사를 능역밖 지금의 봉은사 자리로 옮기고
견성사를 봉은사라 개명하고 중창 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봉은사 말지에 기록되어 있다,
2015, 4, 4,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