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수류정
보물 제 1709 호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151번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은 사철이 아름답지만 철쭉꽃 피는
4월 이맘때가 제일 아름답다.
방화수류정은 화성의 북수문인 화홍문(華虹門)의 동측 구릉 정상
즉 용연(龍淵) 남측에 불쑥 솟은 바위 언덕인 용두(龍頭) 위에 있다.
방화수류정은 조선 정조 18년(甲寅,1794) 9월 4일 진시(辰時)에
터다지기 공사에 착수하여 10월 4일 묘시(卯時)에 정초를 하고
기둥을 세웠고, 7일 오시(午時)에 상량(上樑)하였으며, 10월 19일
완공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정조 19년(1795) 2월 14일에 화홍문을 경유하여
방화수류정에 임금과 신하가 거동한 기록이 있고, 정조 21년(1797)
1월 29일에는 방화수류정에서 임금과 신하가 활을 쏘았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의 방화수류정은 옛스러움은 많이 사라 젖지만
그래도 여전히 봄의 방화수류정은 철죽이 피어 아름답다.
방화수류정은 화성의 동북각루이며 전시용 건물 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해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조성된 건물이다.
방화수류정 밖 용머리바위 아래에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살려 연못을 파고 작은 섬을 만들어 용연(龍淵, 龍池)이라
이름하였다.
가뭄이 들었을때 이곳 용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하며,
용연은 남쪽 가파른 언덕위에 있는 방화수류정과 어우러저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사진인들이 많이 찾는곳이다.
2021, 4, 19, 촬영,
방화수류정 현판을 쓴 사람은 원곡(原谷). 김기승(金基昇, 1909-2000) 서예가 이다,
충청남도 부여(夫餘) 출신으로 6세 때 할아버지 김동효(金東孝)에게서 한학을 배우며
붓을 들기 시작했다, 중국 상하이(上海)의 중국공학대학부(中國公學大學部)
경제과를 졸업한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백범(白凡) 김구와 도산 안창호를 도와
독립운동을 벌이다 1936년 귀국했다. 1952년 제1회 국전에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
계속 제4회까지 특선을 받았고, 1961년 이래 국전 추천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