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 major op.61
당신은 마음이 기쁘거나 우울할때면 어떤 음악을 들으며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고 있는가,, 요즈음 코로나로 인하여 촬영을 가지 않고
집에서 쉬는 날이면 좋아하는 음악이나 평소 잘 듣지 않았던 음반을
꺼내 하루종일 음악을 듣곤한다,
기쁜일이 있어도 듣고 속상하는 일이 생겨도 듣는곡이 있다,
이 곡 이야말로 내가 슬플때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정화시켜
주는 맑은 샘물같은 곡이며 내가 나태하여 주저하고 있을때
나의 등짝을 두드려 깨우는 죽비와도 같으며 일상의 번뇌로 마음에
상처받아 있을때 나를 새로운 출발선으로 이끄는 힘찬 트럼펫
기상나팔 소리와도 같은곡이다,
그 곡은 바로 베토벤의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 Op61, 이다,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베토벤, 멘델스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손꼽는데 그 중에서도 베토벤과
멘델스죤 의 작품을 아담과 이브의 협주곡이라고 부른다, 베토벤의
협주곡은 남성적이고, 멘델스죤은 여성적이라는 의미지만, 아무튼
베토벤의 바이올린협주곡은 동서고금의 바이얼린 협주곡을 통하여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할수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협주곡에서 황제다운 장엄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면 멘델스존의 곡에서는 서정적인 여왕과 같은 아름다움이
느껴지며 브람스 바이올린협주곡에서는 따듯한 서정적인 질감이
느껴진다 말할수 있다,
각 곡마다 독특한 매력이 있는 곡들이다. 이 곡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갖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해당 작곡가들이 남긴 오직 단한곡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 이라는 점이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61
1806년에 작곡된 이 곡은 베토벤 생전에는 전혀 주목 받지 못하다,
1844년 요제프 요하임(당시 14세)의 바이올린과 멘델스존의 지휘로
다시 연주된 후 주목받기 시작했다. 베토벤이 이 한 곡만 남겼다 해도
음악사에 위대한 작곡가로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평가받고있다,
이 곡은 1806년 그가 38세 때에 작곡한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명 바이올리니스트 클레멘트를 위해 쓴 곡이다. 베토벤은 여기서
바이올린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구사했으며 오케스트라와의 융합을
이루어 교향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 당시 오스트리아는 프랑스군에
점령당한 때였지만 불멸의 연인 테레제와의 희망에 찬 교제가 한창
이었으므로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규모가 큰 구상에 풍부한
정서, 찬연하고 어려운 기교 등으로 보아 그의 독특하고 힘찬 정열을
가진 작품이다.
베토벤이 이 곡을 쓴것은 교향곡 5번 <운명>, 6번<전원>을 쓰기
2년전으로 베토벤의 창작열이 한껏 무르익은 절정기 직전에 해당
된다할수있다, 베토벤이 이곡을 쓴 1806년 은 베토벤의 생애 중 가장
행복한 시기 였다고 한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테레제와 그해 5월 (베토벤의 나이 36세) 에
약혼 하고 그 기쁨을 가눌 길이 없어 쓰고 있던 교향곡 5번을 중단한 채
제4번교향곡을 단숨에 작곡했고 이어 같은 해에 바이올린 협주곡도
완성했다.
최근 음악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연애상대는 테레제가 아니고
동생 죠세핀(Josephine)이었는 설이 있다, 그녀는 어떤 백작과 결혼했으나
이때는 미망인이 되어 있었다. 언니인 테레제의 일기에도 이무렵의
동생과 베토벤의 특별한 관계를 "죠세핀은 미망인 이었을 때 왜 베토벤과
결혼하지 않았을까? 그편이 슈타크베르크 백작과 재혼 한 것 보다 훨씬
행복 했을텐데 ~ " 라고 긍정적으로 적고 있다. 죠세핀과의 뜨거운 사랑은
맑게 정화된 에로티시즘을 내뿜는 바이올린협주곡 제2악장의 그지없이
아름다운 선율에 그대로 반영되어있다.
그리고 이곡은, 비엔나출신의 명 바이올리니스트 프란츠 크레멘트(Franz Clement)
를 염두에두고 작곡 하였다하며 독주부분은 클레멘트의 조언을 들어
가면서 작곡하였다고 하는데, 그는 당시 안데어-비인 극장의 콘스트마스타
였으며, 1806년 12월23일 클레멘트의 독주로 초연 되었다고 한다.
"바이올린협주곡의 황제"라고 불리는 이 대걸작은 1868년 당대의
명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Joseph Joachim)의 연주와 멘델스죤의
지휘로 더욱 유명 해지게 되었다. 베토벤은 바이올린협주곡을 단 한곡
밖에 작곡하지 않았지만, 이 곡은 바이올린음악사에 빛나는 이름을 남긴
불후의 명곡이며, 베토벤 바이올린음악의 집대성된 작품 이라할수있다,
이곡은 베토벤이 쓴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면서 이 장르 최고의
걸작이다. 장대한 스케일과 역동감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가운데 깊고
뜨거운 열정이 강렬한 힘으로 뿜어져 나오며, 팀파니의 5번의 연타로
시작되는 첫 악장부터 불꽃이 튀는 듯한 마지막의 론도 악장에 이르기까지,
꽉 짜인 곡의 구조와 악기간(독주와 오케스트라)의 균형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고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들에 비해 남성적 강인함은 다소 덜한 편이지만,
정(靜)과 동(動)의 교묘한 공존에서 빚어지는 긴장감은 엄청난 힘을 발한다.
유명하다는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누구나 이곡을 녹음하여 음반으로 남겼다,
시중 음반가게에 가면 여러종의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음반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옥석을 가리라 한다면 주저하지않고 맨 먼저 다비드 오이스라흐의
연주, 앙드레 클레탕스 지휘, EMI음반을 추천하고싶다, 여기에 내가 소장하고
자주 듣고있는 몇장의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명반 LP음반을 소개한다,
2021, 1, 19,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바이올린 / 앙드레 클레탕스 지휘,
프랑스국립방송교향악단 연주 / EMI LP음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 David Oistrakh
1908, 9, 30 - 1974, 10, 24,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는 20세기 소비에트 연방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1908년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오데사 국립 음악원을
졸업한 1926년까지 13년 간 표트르 스톨야르스키(Pyotr Stolyarsky)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오이스트라흐는 1934년부터 모스크바 음악원에 출강한 데
이어 1939년에 음악원의 교수가 되었다. 교수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대전이 발발했지만, 오이스트라흐는 전쟁 중에도 모스크바에 남아 학생 지도와
연주를 계속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을 침공하자 다른 많은
연주자들과 마찬가지로 오이스트라흐 역시 전선으로 향했다. 그는 콘서트홀이
아닌 최전선, 공장, 병원 등에서 군인과 노동자, 환자들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는 멜로디아, 그라모폰, EMI에서 많은 녹음으로 주옥같은 명연을
남겼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바이올린 / 앙드레 클레탕스 지휘,
프랑스국립방송교향악단 연주 / EMI LP음반
야샤 하이펫츠 바이올린 / 샤를 뮌시 지휘 / 보스턴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RCA빅터 LP음반
헨릭 쉐링 바이올린 / 한스 슈미트 지휘 /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
필립스 LP음반
정경화 바이올린 / 키릴 콘드라신 지휘 / 비엔나필하모니연주,
데카 LP음반
정경화 연주의 이 음반은 모스코바 출생의 세계적인 지휘자 키릴 코드라신
지휘, 비엔나필하모니오케스트라 연주로 콘드라신이 죽기 2년전인 1979년에
데카에 의해 녹음되었다, 정경화가 1948년생이니 그의 나이 31살에 연주
녹음한 음반이다,
아이작 스턴 바이올린 / 레너드 번슈타인 지휘 / 뉴욕필하모니오케스트라 연주,
CBS LP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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