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과 철원평야의 두루미
경자년 2020년 설날 아침에
내 어릴적 설날은 온 세상이 하얀눈으로 뒤덮혔었다,
우리집도 앞집도 이웃집도 앞 산도 들녁도 동네 모두가 하얀 설국이었다,
그리고 설날이 다가오면 어머니가 재봉틀을 돌려 손수 정성들여 만든
색동저고리와 청포빛 바지를 설빔으로 입었고 그리고 읍내 장터에 나가셔서
꾸러미 겨란을 팔아 그돈으로 사오신 하얀 운동화를 신었다,
설날 아침은 이른새벽부터 온 집안이 떠들석했다, 먼저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싸리비를 들고나가 마당을 쓸고 마당엔 멍석을 폈다, 할머니, 어머니가 정성들여
준비한 녹두전과 다식, 각종과일 육포등을 푸짐한 상차림으로 올려 조상님들께
큰 절로 차례를 올리고나서 다음 순서로 부모님께 먼저 세배를 드리면 반드시
미리 준비해온 아직 인쇄잉크 냄새가 채 마르지 않은 새돈을 세배돈으로주셨다,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한두번 하신후 손이 베일듯한 빳빳한 지폐 한 두장을
내손에 쥐어주시며 어린 내 머리를 쓸어 내리시면서 '이제 많이 컷구나' 라고
한마디 말씀을 잊지않고 하셨다,
다음 차례는 동네를 한바퀴 돌며 나이드신 어르신들께 세배를 올리는 일이었다,
그러면 세배돈을 꺼내 주시거나 토광에서 설 음식을 내어다 주시곤 했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며 동네 서당에가서 한문을 공부했는데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소학, 논어 같은 책으로 공부를 했다, 훈장선생님에게 세배를 가면
나를 특별히 귀여워 해주셨다, 지금도 가끔식 그 때 서당에서 큰 소리를 내어
읽었던 천자문을 암송해보곤 한다, 천지현황 하고 우주홍황 이라,
일월영책 하고 진숙열장 이라, 한래서왕 하고 추수동장 이라,
그리고 세월이 흘러 타관을 떠돌아 살기 수십년, 그 사이 부모님은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고 고향이라고 어쩌다 찾아가면 모두 낮선 사람들뿐이고
내가 알만한 옛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손가락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나이드신 어르신들은 그동안 세상을 뜨셨고 타관에서 이사온 낮선 사람들이
동네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동네모습도 많이 변했다,
겨울이면 추녀끝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장대처럼 매달렸던 초가지붕은
새마을사업으로 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뀌었고 마을 뒷편 고갯길에 떡 버티고 있어
여름이면 매미를 잡거나 찌게벌레를 잡으려 올랐던 왕자같이 무성하던 느티나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젔다, 등너머 으시시하게 주저앉아 있어 비오는 날이면
더욱 음산하고 무서워 그 앞을 지날때면 뜀박질을하며 자나갔던 상여집도
성황당도 모두 자취를 찾을길 없다, 내가 잊고 있던 그 시간의 두께만큼 고향은
낮선동네 타관으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경자년 설날을 맞이하며 철원평야 논두렁길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두루미를 촬영 하면서 어린시절 눈쌓인 동구밖 앞산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산토끼 몰이하던 어린시절 동심으로 돌아가 고향의 정겨운 설날 풍경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며 어머니 모습을 살며시 떠 올려본다,
2020, 1, 24, 철원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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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설날
- 김종해 -
우리의 설날은 어머니가 빚어주셨다
밤새도록 자지 않고
눈 오는 소리를 흰 떡으로 빚으시는
어머니 곁에서
나는 애기 까치가 되어 날아 올랐다
빨간 화롯불 가에서
내 꿈은 달아 오르고
밖에는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눈이 내렸다
매화꽃이 눈속에 날리는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가 이고 오신 하늘 한 자락에
누이는 동백꽃 수를 놓았다
섣달 그믐날 어머니의 도마 위에
산은 내려와서 산나물로 엎드리고
바다는 올라와서 비늘을 털었다
어머니가 밤새도록 빚어 놓은
새해 아침 하늘 위에
내가 날린 방패연이 날아 오르고
어머니는 햇살로
내 연실을 끌어 올려 주셨다,
제 블을 찾아주시는 불친님께 새해 하례 드립니다,
경자년 새해에 온 가정에 만복이 깃드시길 바라며,
항상 건강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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