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문의 기억
문을 열면 보인다 하여 손가락에 침을 발라 가며 장지문에 구멍을 뚫어
토방 아래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 고랑이 깊은 음색과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 집 처마 끝에 걸린 그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송수권 시인의 '여승' 이라는 시의 한 대목이다,
송수권시인의 이 시를 읽을때마다 하얀 문창호지 바른 문살이 촘촘한 장지문을
떠올린다, 이제 문창호지를 바른 장지문은 고궁이나 박물관에나 가야 볼수있는
잊혀저가는 우리삶의 옛모습이 되었다,
가을이 깊어저 서리가 내릴 무렵이면 내 어린시절 어머니는 매년 습관처럼
하시는 일이 있었다, 더럽혀지고 구멍이 숭숭난 집안 출입문의 문창호지를
벗겨내고 새로 사온 하얀 문창호지에 풀을쑤어 풀칠을 하여 문에 바르는 일이다,
그렇게 문창호지를 새로 입혀야할 문짝은 집안에 하나 둘이 아니었으니 그 일은
하루 왼종일이 걸리는일 이었다, 안방문, 웃방문, 건너방문, 사랑채문, 나이어린
나는 강아지처럼 어머니 옆에 바싹 달라 붙에서 어머니가 하시는 그 일을 지켜보곤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문살에 하얀 문창호지만 바르는것이 아니였다, 문고리 주변에는
말린 국화꽃잎이나 나뭇잎을 한두개 넣고 문창호지를 덧 발라 장식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종일을 양지바른 뜨락에 문짝을 세워 말린후 해가 설핏해
지는 저녁무렵 문짝을 문틀에 걸으셨다,
다음날 아침 꾸물거리며 늦장을 부리던 환한 햇빛이 방긋 문에 햇살을 비추면
문창호지 사이에 넣은 국화꽃잎이 그렇게 아름다울수가 없었다, 어린 마음에도
참 보기좋은 모습 이었고 어머니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신기해했다,
국화는 꽃으로는 시들고 이미 생을 마쳤지만 문창호지 속에 미이라로 다시 환생한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 고향을 떠나 고단한 서울생활을 하면서 어릴때 보았던
하얀 문창호지 바른 안방문의 기억을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이제 내 나이가 그때
어머니 나이가 되어서야 늦가을이 오면 어렸을때 어머니가 문살에 문창호지를
바르던 일이 목에 걸린 생선가시 처럼 생각나기 시작했다,
바람한점 들어올곳 없는 도시 아파트의 샷시 이중창은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 한다면
고향 초가집 문창호지 바른 낡은 문짝 문풍지 사이로 윙윙소리를 내며 들어오던
황소바람은 대자연과의 소통이었고 아름다운 늦가을 풍경중 하나였다,
2019, 11,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