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꽃 필무렵-8
명재윤증고택 / 장독대
일생동안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백의정승 윤증,
그는 뜻을 이룰수없는 벼슬은 소용이 없다 생각한 선비였다.
비록 그가 벼슬을 거부 했지만 종학당에 머물며 후학들을 길러
무려 47명을 대과급제, 정계에 진출 시켰다.
충남 논산시 노성면에 위치하고 있는 명재 윤증 고택은
조선후기 1709년에 지어진 고택이다.
고택 사랑채 앞마당과 그옆 작은 연못 주변에
배롱나무를 심어 지금 배롱나무꽃이 한창이다,
사랑채 옆에는 1,000여개의 장독이 있는데 대대로 선대로 부터
비법을 전수받은 전통적인 방법에 이집 종부의 손맛이 더해저
장이 숙성되고 있다,
윤증(尹拯, 1629 -1711)은 당대 소론파의 지도자이며 대학자 였다,
수차례의 관직임명에도 고사 하였고 특히 우의정 임명도 마다하여
그를 백의정승이라 불리기도 했던 인물이다,
본 윤증고택은 18세기 윤증의 후학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그가 직접 거처했던
것으로 알려저 있으나 그러나 윤증선생은 현재의 고택에 실제는 살지 않았다,
실제 살던 고택은 현재 유봉영당 자리이며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초가집에서 반찬 두개로 버티는 윤증을 위해 제자들이 돈을 모아 1709년
윤증고택을 건립하지만 윤증은 그리 큰 집은 필요치 않다 하며 들어가
살기를 거부 했다,
평소 윤증은 보리밥에 반찬으로는 볶은 소금과 고춧가루만 먹었다 한다,
현재 윤증고캑은 행랑채가 없다 사랑채는 밖으로 떨어저 나와 있으며
집을 둘러싸는 담장도 없다, 윤증선생의 소박한 삶의 철학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선생의 유지는 지금까지 내려와 현재도 제사상을 매우
소박하게 차리고 있다,
현재 윤증고택에는 윤증의 13세손 윤완식씨와 그의 가족이 살고 있으며
현재 1,000여개의 장독은 윤증고택 건립 당시에는 없었고 근래 10년사이에
그의 후손들이 조성한 것이다, 나의 어머니가 파평윤씨이며 파평윤씨
충경공파 30세 정일 자손이시어서 윤증고택에 애착을 갖이고 조심스럽게
고택에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여 이리저리 돌아 보았다,
2018, 8, 7,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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