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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공연·예술

저녁별의 아리아

 

 

저녁별의 아리아

 

추석을 앞두고 평소 존경하는 한 지인으로부터 '저녁별의 아리아' 라는

타이틀로 풍월당에서 최근 제작한 2장의 CD세트를 우체국 택배로 선물

받았다,

 

한때 국내 굴지의 호텔을 경영하기도 했던 Y사장님은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 하시는분이신데 CD를 구입하시면서 내 생각이 나서 한질 더 구입해

보내 주신다했다, 얼마나 고마운지 가슴이 뜨거워젔다,

 

대부분 이름만 들으면 금새 알만한 낙익은 오페라 아리아들이 수록된

오페라 아리아의 정수들만을 엄선하여 모아놓은 소중한 음원이었다,

누구나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이 있게 마련인데 나에게

음악CD는 그 무었과도 비교할수 없는 귀한 보물과 같은 선물이다,

 

풍월당의 박종호씨는 한번도 직접 만난적은 없지만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잘 알고 있는 터이다, 그는 의사 이지만 누구보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음악애호가이다, 그가 저술한 음악관련 책과

신문기사를 빼놓지 않고 거의 다 읽어 보았는데 해박하고 폭 넓은 음악적

소양에 늘 놀라곤 했다,

 

2장의 CD세트 안에는 소책자로된 곡 해설서와 함께 편지형식의 음원을

제작하게된 경위와 표지 그림에 대한 친절하고 자상한 설명도 함께 동봉

되어있었다, 마치 카페에서 친구와 주고받는 이야기 처럼 쓰여진 편지형식의

내지 글은 여기에 담긴 오페라 아리아들이 어떤 곡들인지 가늠할수 있는

느낌 마저 주었다,

 

CD 표지 자켓 그림은 '앙리 루소' 의 <카니발의 저녁> 이라는 그림이다,

물기 하나없는 빠싹 마른 나무들을 뒤로하고 축제 의상을 입은 남녀

두사람이 걸어 나오고있는 1886년에 그린 그림이다,

 

하늘 높히 중천에 둥근달이 걸려있고 푸르고 차가운 밤이다,

숲 넘어 보이는것은 머나먼 산과 구름낀 하늘뿐, 어둠과 정적이 내려앉은

숲속에는 생명의 기운이 없다, 그림 제목의 카니발,, 축제,, 분위기는

그림속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축제의 분위기를 느낄수 있는것이 있다면

피에로 옷을 입은 그림속 남자와 에이프런을 두른 여자 모습에서 잠시

느껴질뿐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축제가 끝난뒤의 허탈한 기분같은 느낌으로

매일을 사는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음악이 필요하다,

 

 곡 목록에서 알수 있드시 CD-1 첫 트랙 '주세페 베르디' 의

'라트라비아타' 로 시작해서 CD-2 의 15 트랙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까지

총 30곡이 들어있다,

또한 타이틀과 가장 잘 어울릴것 같은 상징적인 곡으로 CD-1, 트랙 15곡은

'리하르트 바그너' 의 '탄호이저' 중 제3막 제2장에 등장하는 '저녁별의 노래' 도

들어있다,

 

전곡을 욕심내 한번에 다 들어보려 서두를 필요는 전혀 없다,

듣고 싶은 곡을 천천히 순서에 관계없이 여유롭고 느긋하게 몇곡씩

나누어 들으면 된다, 값 비싼 고가의 오디오, 유명 스피커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듣기에 편하고 내가 감동 받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음악은 그저 귀로만 듣는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알고보면 음악에는

맛도 있다, 혀끝으로 느끼는 그런 맛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뇌리로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찰라의 맛,, 겨자를 잔뜩 묻힌 초밥 한덩이를

입에 넣었을때 느끼는 톡 쏘는 짜릿한 맛, 벌꿀처럼 끈적하고 달콤한맛,

침샘의 침이 울컥 솟아날것 같은 신맛, 역겹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맛,, 등

 

여기에 수록된 음원을 나 혼지만 듣는것이 너무 사치스럽고 호사스러워

내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불친님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여기에

소개한다, 다시한번  이 소중한 음원을 선물로 보내주신 마음이 따듯한

Y 사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2023, 9, 21,

 

 

 

 

 

 

 

                                                                        앙리 루소 <카니발의 저녁> 1886

 

앙리 루소(Henri Rousseau)는 프랑스의 화가이다.

1844년 가난한 배관공의 아들로, 프랑스 마옌 데파르트망 라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중퇴(고등학교때 미술과 음악에서 소질이 있었다고 함)하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보조업무를 하다가 위증죄로 수감되기도 하여 도망치듯 군입대 했다,

 

육군에 입대하여 군악대에서 복무하다가 부친의 사망으로 의가사 제대후 파리에서

모친과 함께 살며 서기로 일하다가 25세에 주인집 딸인 10세연하 15세 크레망스와 결혼한다. 

이후 처가의 소개로 파리 세관에서 세관원으로 근무하며 전문적인 교육없이 독학으로

틈틈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때 부터 독학으로 주말마다 그림을 그렸기에 ‘일요화가’의 대명사로도 널리 알려졌고,

또한 르 두아니에(세관원)란 애칭을 얻게 되었다,

이후 22년간 세관원 생활을 계속 하다가 1893년 49세가 되던해에 전업화가의 길을 걷기위해 퇴직한다,
1880년경부터 그림을 그렸다고 추정되는데, 그는 1884년 르부르미술관에서 모사증을 받아

명작을 모사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이를 몹시 자랑스럽게 여겼다.

1885년 이후부터는 자신의 작업실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전시회에 참여하는데,

살롱 드 샹젤리제에 2점의 작품을 출품한 것이 시초이다.

 

1886년 독립미술가전(앙데팡당)에 루소가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

〈카니발의 저녁 Carnival Evening〉은 출품작 가운데 대표작이며,

그로서는 매우 인상적인 출발이었다.

 

하지만 이 후 그의 작품들은  비평가들의 한결같은 조롱을 받았을 뿐 아니라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시기에 그는 앵데팡당 미술전에 약 20점의 그림을 출품했지만,

그림 작업과 직장 및 가정생활에 시간을 쪼개 쓰고 있었기에 본질적으로는 아직도 아마추어였다.
 
그의 가정생활은 힘든 삶의 일부였다.

부인 크레망스와의 사이에서 일곱 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그 중 다섯 명이 죽고 크레망스마저 1888년 34세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또한 장성한 유일한 아들인 아나톨도 18세의 나이로 사망해 그는 친척들과 함께 살기위해

보낸 딸을 제외하고는 모든 가족을 잃었다, 10여 년 동안을 부인 없이 지낸 루소는

미망인인 조세핀누와 재혼했는데 조세핀누 역시, 4년 후에 사망하고 만다. 


루소는 1890년에 그린 (나 자신, 초상 : 풍경)이란 작품에서

그림 속 자신이 들고 있는 팔레트에 이 두 여인의 이름을 써 넣어

먼저 간 크레망스를 추모하고, 재혼한 조세핀누의 건강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