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 광장
수흐바타르 광장
몽골 / 울란바토르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중심부에 있는 거대한
광장으로 이름은 몽골의 국부 칭기즈 칸에서 따 왔다.
참고로 "칭기즈칸 광장" 을 "수흐바타르 광장" 으로
부르기도 한다,
공산주의의 몰락을 가져온 첫번째 민중집회가 열렸던 곳,
울란바타르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바로 이곳에서 1921년 7월
'혁명영웅' 담디니 수흐바토르(Damdiny Sukhbaatar)가 중국으로부터
몽고의 독립을 선언했다.
담디니 수흐바토르는 1920년대 중국으로 부터 몽골을 독립시킨
국민영웅이다. 몽골의 모든 지혜에 그의 그림이 세겨져 있고,
그의 동상 앞에는 항상 경찰병력이 보초를 서며 관리할 정도로
사랑받는 영웅이다.
이 광장은 1989년 결과적으로 공산주의의 몰락을 가져온 첫번째
민중집회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평소에 내국인은 물론이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이곳을 찾아온다,
2019, 7, 31, 촬영,
국회의사당 건물
'혁명영웅' 담디니 수흐바토르(Damdiny Sukhbaatar) 기마동상
담디니 수흐바토르는 체첸 한 아이막(Цэцэн Хан аймаг)유목민의 집안에서 태어나 16세 때
후레-캬흐타 간의 역전(驛傳)마차의 마부가 되었다. 1911년, 몽골 독립 후 건군된 자치(自治)
몽골군의 소집을 받고 입대, 하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기관총 소대장으로서 전공을 세웠다.
1918년, 정부 인쇄소의 식자공(植字工)이 되었는데, 그 동안 중국과 무능한 몽골 지배층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혁명에 자극을 받은 그는 1920년 6월 허를러깅 처이발상등과
함께 몽골 인민당(인민 혁명당)을 결성,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에 들어갔다. 전후 두 차례에 걸친
블라디미르 레닌과의 회담을 통하여, 몽골 혁명의 성공과 그 후의 국가 건설을 위한 전술 지도를 받고,
1921년 인민의용군을 결성, 그 총사령관이 되어 적군(赤軍)과 함께 마이마친에서 군사를 일으켜,
7월 10일 니슬렐 후레(울란바타르)에 인민정부를 수립하고 스스로 국방장관이 되었다.
30세(1923년) 때 피살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부인은 양지마(1893-1963)이다,
'혁명영웅' 담디니 수흐바토르(Damdiny Sukhbaatar) 기마동상
우체국 건물
샹그리라 호텔
국립오페라발레극장
몽골의 지방 어디쯤에서 울란바토르로 여행온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몽골인 여행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있는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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