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신원사
계룡산 신원사 新元寺 /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8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
전 화 / 041 - 852 - 4230
신원사는 충남 계룡산 자락 갑사와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고 있는
풍광이 수려하고 유서깊은 사찰이다,
봄에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아름답고, 5월이면 경내를 감싸고 있는
철죽이 일품이고, 7월말, 8월초에는 배롱나무꽃이 너무나 아름답다,
7월말경 이곳에 가야 하는데 장마철과 무더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좀 늦었지만 배롱나무꽃 풍경을 담으러 계룡산 신원사에 다녀왔다,
2017, 8, 12, 촬영,
칠성각 과 배롱나무꽃
전각 중앙에 걸려있는 현판에는 "독성각"(獨聖閣)이라 쓰여 있는데 출입문 위에는
"칠성각"이라 한글로 쓰여있는 작은 편액이 걸려 있다,
한국불교에서 "독성각" 과 "칠성각" 은 좀 다른 의미를 갖이고 있으나 신원사에서는
불교의 큰 틀에서 같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듯 하다,
칠성각(七星閣)은 인간의 수명 장수와 재물을 관장하는 칠성신을 모시는 전각으로 칠성은
본래 도교에서 신앙하던 것으로 한국으로 들어 오면서 좀 다른 의미의 민간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독성각(獨聖閣)은 나반존자를 모신 곳으로 이 존자는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한
성자 였다하여 독성(獨聖)이라는 이름을 갖었다, 그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일을 알수 있고
중생에게 복을 주고 그의 소원을 성취 시켜줄수 있다한다, 독성각에는 나반존자상을 모시지만
독성탱화를 걸어두기도 한다,
칠성각 옆에 있는 수령 수십년된 배롱나무에 붉은 선홍빛 배롱나무꽃이 활짝 피었다,
배롱나무는 마치 커다란 우산을 펼친 형상으로 칠성각을 향하여 비스듬히 굽어있어
그 모양이 더욱 아름답다, 이날 촬영에서 아쉬운 점은 아침 이른 시간 이어서 빛이 없었고
하늘엔 구름이 끼어 시계가 그리 밝지 못했다,
내가 요즘 읽는 신간서적 중에 배국환 지음 시가 있는 역사문화 에세이
<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에 가라> 라는 책이 있는데 나는 배롱나무 꽃필 적에
안동 풍천면의 병산서원이 아닌 충남 계룡산 신원사에 간셈이 되었다,
여행과 문화재 답사에 괸심이 있다면 배국환 지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에 가라>
배국환 지음 / 나우린 그림 / 도서출판 나눔사 / 13,000원
계룡산에 대하여
풍수지리 사주 명리학에서 산을 음산(陰山)과 양산(陽山)으로 나눈다,
음산은 육(肉)이 많은 산을 일컷는다, 육이란 흙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지리산, 오대산, 모악산 같은 산들이 한국의 대표적인 육산(肉山),
흙이 많이 덮혀있는 산으로 음산(陰山)이다,
양산(陽山)은 골(骨)이 많은 산을 일컷는다, 골이란 바위를 말한다,
바위가 산에 많이 있는산이 골산, 즉 양산 인것이다,
양산은 바위가 많은 산이므로 지기(地氣), 땅의 기운이 많이 강하게 방사 된다고 보는것이다,
그러므로 바위가 많은 양산은 종교적 영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티베트의 오지에 있는 카일라스 산이 바로 그런 바위중 에도 기가 강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한국의 카일라스 산을 들라면 단연 계룡산이 으뜸이다,
계룡산은 산 전체가 명당이 수두룩한 곳이지만 탄허스님 같은 고승은 학하리를 아주 좋아했다,
지광사 터는 원래 우암 송시열이 공부하던 집성사 자리로서 우암이 여기에 주자 영정을 모셔놓고
공부하던 곳이었다, 지금도 우암이 심어 놓았다는 향나무가 남아 있다,
19세기 후반 계룡산 국사봉의 허름한 토굴에 앉아서 북극의 빙하가 녹을것이라 예언했던
김일부와 방랑자 해운, 그리고 이를 많은 사람에게 알린 탄허스님 같은 분들 모두 기가 센
계룡산에서 도를 닦은 분들 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사주명리학이나 풍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가 센 양산, 바위산으로 간다,
모세는 시나이산으로 갔고, 주자는 무이산, 포박자를 저술한 갈홍은 나부산으로,
증산은 모악산으로 갔으며, 탄허는 오대산과 계룡산에서 도를 수행 하였다,
서울을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는 인왕산 이나 북한산도 바위로 이루어진 양산, 골산 이어서
서울은 풍수지리적으로 이 바위산에서 내뿜는 좋은 지기(地氣), 땅의 기운을 받고 있다 볼수 있다,
태조 이성계와 계룡산
1392년 7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다음해인 1393년 2월 계룡산으로 직접 행차한다,
왕사 무학대사와 측근들을 동행시킨 그는 이곳 현장에서 새로운 도읍지를 직접 설계한다.
그리하여 계룡산 도읍지 건설공사는 이후 10개월동안 진행되어 기초공사가(주춧돌)가 마무리 된다.
그러나 태조는 그해 12월 계룡산 도읍지 공사를 갑자기 중단 시킨다.
아들 이방원(훗날 태종)에게는 하륜 이라는 풍수가가 있었는데 하륜이 올린 한장의 상소 때문 이었다.
계룡산 도읍지는 새로나온 풍수서 "지리신법" 에 따르면 망해 나갈 터 라는것이 하륜의 주장 이였다.
이렇게 해서 도읍지는 계룡산 에서 지금의 서울 한양으로 결정 되었다.
신원사 창건에 대하여
백제 의자왕 11년(651) 고구려 승려인 보덕화상에 의하여 창건 되었으며,
보덕화상은 고구려말 보장왕(643년)의 국사로서 정치의 부패를 상소 하였으나
관철되지 않아 백제로 망명하여 현재의 신원사 자리가 불가사의 한 기가 서려
있다하여 사찰을 짓고 열반경을 강설 하시니 신라의 고승 원효와 의상도
명성을 듣고 오셔서 청법하였다 하며 <대각국사문집>에 의하면 보덕화상이
원효의 스승이라 하였음,
1866년(고종3)관찰사 심상훈이 중수하면서 신원사라고 이름 하였으며 1876년
보연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계룡산의 동서남북 4대절 중 남사(南寺)에
속한다,
대웅전 / 지방문화재 제80호
백제 의자왕 11년(651) 보덕화상이 창건, 신라말 도선국사(827-898)에 의해 중창,
조선조 태조 2년(1393) 왕명에 의해 무학대사가 중창 함, 조선 고종 13년(1876년)
명성왕후의 후원으로 보련화상이 중창 함,
종루(좌측) 와 국제선원(중앙 정면)
세계 각국 외국인들이 숭산, 벽암 대종사의 참선지도로 많은 외국인이 출가 수행자가 되어
현재 전세계 70여국에 선 센터 분원을 열어 한국불교를 널리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