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라벤더, 로제 와인, 프로방스가 주는 삶의 위로
아침에 문 앞에 배달된 조선일보 신문을 뒤적이다,, 정치면은 보기싫어
건너뛰고 뒷면쪽에 얼른 눈에 띠는 기사가 있어 안경을 찾아 쓰고 신문기사를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뉴욕 FIT교수 박진배의 프로방스 이야기 기사가 그것이다,
남프랑스 프로방스는 내 마음속의 숨겨둔 낙원이며 가 보고싶은 여행지이자,
'알퐁스 도데' 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 의 기억 때문이기도하다,
2025,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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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라벤더, 로제 와인, 프로방스가 주는 삶의 위로
프랑스의 동남부, 지중해와 이탈리아의 경계를 면해 프로방스가 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고, 후에 그리스, 로마인들이 정착한 유서 깊은 땅이다.
언덕 위의 그림 같은 마을, 꽃이 만발한 정원, 라벤더 밭, 그리고 밀짚모자 쓰고
주름치마를 입은 여인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지역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흔히 프로방스 스타일을 대표하는 점토 타일 건물, 노란색 벽과 나무 덧창,
장식장을 가득 메운 그릇, 리넨 식탁보 곁의 허브 한 묶음은 카페나 주택의
인테리어에도 빈번히 응용되고 있다. 이런 프로방스의 미학이 사람들이
동경하는 정서가 된 지 오래다.
“프로방스의 태양은 나를 노래하게 만든다”는 표현처럼 이곳은 새파란 하늘과
황금빛 태양으로 ‘색채의 고장’이라 부른다. 이 태양이 선사하는 빛을 그리기 위해서
고흐, 세잔, 마티스가 이주해서 그림을 그렸다. 아를(Arles)에는 ‘밤의 카페테라스’
‘별이 빛나는 밤’ 등을 위해서 고흐가 이젤을 세운 장소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말년에 그가 머물던 정신병원이 있는 생 레미(Saint-Remy-de-Provence)에서
그린 ‘올리브나무’와 ‘아이리스’는 후에 수많은 사람이 이 평범한 나무와 꽃을
유심히 관찰하는 동기를 부여하였다. 화가들과 더불어 카뮈, 콜레트, 알퐁스 도데
같은 작가 역시 프로방스에 머물며 집필 활동을 했다.
프로방스 자연경관의 하이라이트는 발렌솔(Valensole)의 라벤더밭일 것이다.
부드럽게 구불거리는 들판에서 하늘하늘 흔들리는 연보라색 꽃밭은 그야말로
자연이 만든 시(詩)다.
라벤더는 프로방스의 미적 상징일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큰 이득을 가져다준다.
특유의 허브 향을 품은 라벤더 꿀과 비누, 화장품은 세계적 스테디셀러다.
세계 여러 나라의 지방자치단체나 개인이 이곳을 모방해 만든 라벤더 밭도 여럿이다.
프로방스에서 특히 유명한 상품은 향수다. ‘세계 향수의 수도’이자 프랑스의 국민 가수
에디트 피아프가 숨을 거둔 그라스(Grasse)에선 ‘샤넬 넘버5’를 위한 최고 품질의
자스민과 장미를 키운다. 1년에 6억유로 규모다.
이런 산업 전통은 ‘록시탕(L’Occitane)’이라는 세계적 브랜드도 탄생시켰다.
‘프로방스의 색채, 향기, 전통을 판다’는 철학처럼 브랜드의 노랑과 올리브색은
프로방스의 황금빛 햇살과 나무를 은유한다. 지역성과 풍토성에 기인, 그야말로
땅에서 난 것과 주변에서 보이는 걸 가지고 만들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한 성공 모델이다.
프로방스를 이야기할 때 음식을 빠트릴 수 없다
온화한 지중해 기후와 비옥한 석회질 토양으로 올리브, 아티초크, 가지,
마늘 등의 다양한 식재료가 풍부하고, 포도, 복숭아, 딸기, 체리 같은 과일도
맛있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프로방스 음식은 특별한 조리법 없이 재료를 다양하게
조합하고 창의성을 약간 가미할 뿐이다.
그 대표적 요리가 ‘어머니의 음식’이라는 라타투이(Ratatouille)다.
가지, 토마토, 애호박 등 야채에 올리브 오일과 마늘, 허브를 섞어 만드는 채소 요리다.
오래전, 나의 일본인 멘토가 레스토랑을 열기 전 꼭 다녀오라던 세 곳 중 한 곳이
프로방스였다. 그래서 방문했지만 현지에서 음식이 아주 맛있거나 딱히 기억나는
레스토랑이 없었다. 그런데, 먹을 때는 몰랐는데… 여행에서 돌아와 한동안 어느
레스토랑에 가서 뭘 먹어도 맛이 없던 특이한 경험을 했다. 이것이 프로방스 음식의 저력이다.
‘붉은 마을’로 알려진 루시옹(Roussillon)의 레스토랑 야외 테라스에서 점심을 먹을 때
직원은 “저 아래 보이는 포도밭에서 만드는 와인”이라며 로제를 한 병 추천했다.
프로방스는 로제 와인이 유명하다. 고급 와인은 아니지만 편안하고 쉬운 맛에
지역 음식에 두루두루 잘 맞는 성격 때문이다. 또한 그 특유의 아름다운 분홍색과
프로방스 문화의 유행으로 로제는 여름철 와인으로 세계적인 패션이 되었다.
프로방스에는 로마의 유적지부터 목가적 자연 풍경, 화가들의 흔적, 그리고 일술라소그
(L’isle-sur-la-sorgue)의 앤티크 시장 등 여행객들이 좋아하는 요소가 즐비하다.
자연의 선물을 기반으로 구축한 산업도 탄탄하다. 이 모든 장르는 소박하고 겸손한
미학에 귀결된다. 음식도 겸손하고 와인도 겸손하고 시장도 겸손하고 인테리어도 겸손하다.
그 겸손 속에서 ‘삶의 즐거움(Joie de vivre)’을 지키는 마음이 전부다.
특별함이 없는 것 같지만 온 세계가 모방하고 싶은 가치 기준을 제시하는 곳.
프로방스의 독자적 미학은 마치 향수처럼 이전에 예술가와 작가들을 유혹했고 또 오늘날
방문객을 유혹한다.
“신이 이 세상을 잘못 만들었다고 후회할 때면 프로방스를 만들었다는 걸 기억하며 위안을 삼는다.”
글 출처 / 조선일보 2025, 6, 24,일자 A3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