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릉수목원의 4월
홍릉수목원의 4월
현재 '국립산림과학원'이란 정문 표지가 걸린 이곳은 우리에게
'홍릉수목원' 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곳이다, 이웃하여
세종대왕기념관과 영휘원이 있고 고려대학교와 경희대가 가까히
위치하고 있다,
서울의 도심속에 있어 가까히 있긴 하지만 주말 토, 일요일 에만
일반인에게 개방하여 일반시민의 자유로운 접근이 제한 되고있다,
그 마저도 차량출입은 금지하고 있고 가까운 그 부근에 공공 주차장이
있는것도 아니어서 대중교통 으로만 찾아가야한다,
"홍릉수목원" 이란 표지석은 안으로 들어가 건물 한구석에 서 있긴하다,
현재 공식 명칭은 "국립산림과학원" 이다, 입구에는 "홍릉터" 라는
표지석이 있는데 을미사변으로 일본인에 의해 시해된 명성황후가
처음 묻혔던 초장지가 바로 이곳이고 당시 "홍릉" 이었다,
명성황후는 을미사변(1895년)으로 일본 낭인에의해 시해 당하고 당시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르려 하였으나 고종의 지시로 5차례에 걸친 장례수습회의를
통해 2년만인 1897년에 이곳 홍릉에 안치하게 되었다,
그후 여러사람들의 주청으로 홍릉의 풍수적인 불길함을 들어 금곡홍릉으로
천장을 결정하게 되었고 고종의 지시로 1901년 금곡홍릉 침전이 완성 되었다,
명성황후는 고종이 1919년 승하한후 청량리 홍릉에서 금곡릉으로 합장 되었으며
이로써 능침전으로서의 기능도 건물이 완성된지 18년 만에 비로소 이루어 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상량문에 의해 밝혀젔다, 참고로 사적 제207호 홍 유릉(경기도
남양주시 소재)내 홍릉 침전을 보수하는 공사중에 상량문이 발견된바 있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당시 일본보다 훨씬 강하게 여겨지는 러시아 와의 친분을
강화 하려고 시도 하였다, 즉 일본의 세력을 약화 시키기 위해 러시아의 힘을
이용하려 했는데 이는 일본에 불리한 일이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주한일본공사
미우라 고로를 사주하여 1895,10 ,8,(음력8,20) 낭인들을 동원하여 경복궁으로 침입
고종황제를 위협 하였다, 그들은 옥호루 에서 피신하는 명성황후 발을 걸어
쓰러뜨린후 가슴을 수차례 밟고 이어 난자 살해하여 그 시신을 궁궐밖으로
운반하여 소각 하였다,
만행에 가담한 미우라를 비롯한 48명은 증거불충분으로 석방 되었다,
을미사변은 고종이 아관파천을 결정 하게된 주요원인 이었고 의병봉기의 계기가
되었다, 명성황후 암살 국내 협력자로는 유길준과 흥선대원군이 지목 되었다,
우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우려로 오랫동안 집안에 같혀있던 많은 시민들이 봄꽃이
만발한 홍릉수목원을 찾아 아름답고 싱그러운 4월의 봄날을 즐기고 있었다,
2020, 4, 18, 촬영,
홍릉수목원 표지석
정문에서 바라본 국립산림과학원 본관 전경
할미꽃
할미꽃이라는 이름은 흰털이 촘촘하게 나있는 꽃이 밑을 향하여 꼬부라져 피고,
꽃이 지고 난 후의 씨앗이 노인의 백발을 연상하게 하는데서 유래했다.
한자어로는 백두옹, 노고초라고 한다.
금낭화는 아치형으로 활대처럼 곧게 뻗은 꽃대에 아이들 복주머니 모양의 진분홍색
꽃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꽃이다. 꽃 모양이 옛날 며느리들이 차고 다니는 주머니를
닮았다 하여 며느리주머니 라고도 부른다.
애가똥풀은 젖풀, 씨아똥, 까치다리 라고도 부른다.
4~8월에 황색으로 피는데 줄기 위쪽의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가지 끝에 지름
2~4cm의 꽃이 몇 송이씩 산형 꽃차례를 이루며 달린다. 꽃받침 조각은 2개인데
길이 6~8mm의 타원형이고 일찍 떨어진다. 꽃잎은 4개이고 길이 12mm의 긴
달걀꼴이다. 수술은 약 20개 정도로 많다. 암술은 1개이며 암술머리는 약간 굵고
끝이 2개로 얕게 갈라진다.
엉겅퀴는 야홍화(野紅花), 항가새, 가시나물 이라고도 부른다. 피를 멈추고 엉기게
하는 풀이라 하여 엉겅퀴라는 이름이 붙었다. 4~8월에 자주색 또는 붉은색으로 꽃이
피는데 대롱꽃으로만 이루어진 두상화가 줄기 끝과 가지 끝에 3~4송이씩 달린다.
꽃차례받침은 지름 2cm 정도이며 점액을 분비하므로 끈끈하다. 꽃차례받침 조각은
흑자색을 띠며 7~8줄로 배열하는데 안쪽일수록 길어진다.
골단추 / 골담초
‘골담초(骨擔草)’란 글자 그대로 뼈를 책임지는 풀이란 뜻이다. 옛사람들이
이름을 붙일 때부터 나무의 쓰임새를 알고 있었으며, 실제로 뿌리를 한약재로
쓰고 있다. 골담근이라 하여 말린 뿌리는 약으로 쓰는데, 한방에서는 해수, 대하,
고혈압, 타박상, 신경통 등을 처방하는 데 쓰인다. 노란 꽃의 색깔 때문에 ‘금(金)’자가
들어간 여러 가지 별명을 갖고 있다
‘풀 초(草) 자’가 들어 있어서 초본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자그마하기는 하지만 틀림없는
나무다. 귀여운 나비모양의 노란색 꽃을 감상할 수 있고, 약으로도 쓸 수 있으므로
민가의 양지바른 돌담 옆에 흔히 심는다.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진 콩과 식물이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을 오른쪽으로 돌아 잠시 올라가면 고려 우왕 3년(1377)에
창건한 국보 19호 조사당(祖師堂)이란 자그마한 목조건물이 있다. 건물의 처마 밑에는
너비 3미터, 폭 1.4미터, 높이 2미터의 촘촘한 스테인리스 철망 안에 손가락 굵기
남짓한 작은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름하여 신선 집 꽃이란 의미의 선비화(仙扉花)인데,
옆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나무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중생을 위하여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 처마 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아나고 잎이 피어 오늘에 이르렀다.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도 항상 푸르게
자라고 있다.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이 부석사를 찾아와 이 선비화를 바라보며 시를
짓기도 했다. 이름은 골담초라 한다”라고 하여 이 나무의 의미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또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1730년경 조사당의 선비화를 보고 적어둔 기록이 나온다.
“지팡이에 싹이 터서 자란 나무는 햇빛과 달빛은 받을 수 있으나 비와 이슬에는 젖지
않는다. 지붕 밑에서 자라고 있으나 지붕은 뚫지 아니한다. 키는 한 길 남짓하지만
천년 세월을 지나도 한결같다”라고 하였다
산옥매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관목으로 중국이 원산지다.
4~5월 경에 연홍색 꽃이 피고, 6~8월에 둥글고 털이 없는 열매가 열린다.
중국에서는 흔히 약으로 쓰려고 재배한다.
라일락
유럽 남동부가 원산지인 라일락(S. vulgaris)은 전세계의 온대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
꽃은 홑꽃 또는 겹꽃으로 짙은 자색, 연보라색, 푸른색, 붉은색, 분홍색, 흰색, 옅은 회색,
크림빛의 노란색 등 여러 가지 색을 띠는 수백 가지의 변종이 있다.
키는 6m 정도이며 줄기나 뿌리에서 많은 가지를 낸다. 수수꽃다리를 영어로는 'syringa'라고
부르는데, 이전에는 이 이름이 범의귀과(Saxifragaceae)에 속하는 고광나무속(Philadelphus)
식물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한국에는 5종류의 수수꽃다리속 식물들이 자란다. 수수꽃다리(S. dilatata)는 주로 북한
지방에서 볼 수 있으며, 울릉도에 섬개회나무(S. venosa), 강원도 이북에 꽃개회나무
(S. wolfi)가 자란다. 개회나무(S. reticulata var. mandshurica)와 털개회나무(S. velutina)가
산 속에서 흔히 자라며, 외국에서 들어온 라일락을 뜰에 심거나 가로수로 쓴다.
산철죽
철쭉의 원산지는 한국·중국·일본·만주이고, 온대 중부 이북에 주로 분포한다
철쭉을 개꽃이라고도 부른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 먹을 수 있는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부른 반면, 꽃 모양은 비슷하지만 먹을 수 없는 철쭉을 개꽃이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되었다.
경상도에서는 철쭉의 옛 이름을 연달래라고 했는데, 진달래가 피고 연이어 피는 꽃
이라는 의미이다. 철쭉은 약용 식물로 잎을 강장제, 이뇨제, 건위제로 쓰기도 한다.
경상북도 청도군을 상징하는 군화(郡花)로 지정되어 있으며.철쭉나무 군락지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가지산 운문산을 포함하여 청도군 일원 높은 산 주변에 널리
분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