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성보
사적 ; 제 227 호
인천시 강화군 불온면 덕성리 833
전화 ; 032-930-7070
광성보는 조선 1658 년(효종 9년)에 설치한
강화도 해안수비 진지의 하나입니다.
1679년(숙종5년)에 강화도의 국방시설을 확장할때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돈대를 함께 축조하여
이에 소속시켰습니다.
신미양요때(1871년) 미국군대와 사투를 벌인
격전의 현장으로서 이때 전사한
어재연 장군을 기리는 전적비와
350 여명의 순국영령들을 기리기위한
신미순의총이 있습니다.
광성보는 20 여만평의 자연공원으로 이루어진곳으로 고려시대의 성을
1618년(광해군 10년)에 외성을 보수하고 광성보를 설치하엿습니다.
신미양요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1871년 4월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표방하면서 아세아 함대를 이끌고 1230 명의 병력으로 침략하였을때
상륙부대가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후 광성보에 이르러 백병전이 전개되었습니다.
당시 지휘관인 어재연 장군이하 전용사가 용감하게 싸워 장렬히 순국한 곳입니다.
광성보 내에는 경치가 수려한 용두돈대가 있는데
돈대의 불쑥 솟아나온 모양이 용머리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2012, 3, 13 /15 촬영
용두돈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소재.
용두돈대는 강화해협을 지키던 천연 요새로서 손돌목 돈대에 속해있는 외곽초소겸 포대입니다.
고종8년(1871) 포대가 설치되면서 정비된 곳으로 1977년 강화 전적지 정화보수사업을 하면서 용두돈대라고 부르게되었습니다.
병인, 신미양요때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젖던 현장이며 1977년 성벽을 복원하면서 강화전적지 정화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용두돈대
광성보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천도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입니다.
광성돈대
광성돈대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중 하나로서 숙종5년(1679)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의
승군 8000 명과 어영군 4300 명이 40일만에 완공하였다 합니다.
1977년 포좌 4개소와 포3문이 복원 복원 설치되었습니다.
대포는 홍이포 라고도 하며 서정거리 700m로서 포알은 화약의 폭발하는 힘으로 날아가나
포알자체는 폭발하지않아 위력은 약합니다.
병자호란에도 사용되었다 전하며 소포는 사정거리 300m로서 포알은 대포와 같습니다.
대포는 조준이 않되나 소포는 조준이 됩니다.
작은것은 불랑기라 하며 프랑스군이 사용하던 것이라 합니다.
손돌목돈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손돌목 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된 돈대로 원래 돈대중앙에 3 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가 있었습니다. 돈대넓이는 778 m2 에, 성곽 길이가 108 m 입니다.
고종8년(1871) 신미양요때 미국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젖던 현장입니다.
쌍충비각
쌍충비각은 신미양요때 광성보 전투에서 순절한 어재연 장군과
그의아우 어재순의 충절을 기리기위해 세운 비각입니다.
신미순의총
이곳은 조선 고종8년(1871년) 신미양요때 광성보 일대에서 미해군과 격전하다가 전사한 용사들의 묘가있는 곳입니다.
당시 중군 어재연 장군과 아우 재순을 비롯한 군관, 사졸 53 인의 전사자중 어재연 형제는 고향인 충북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였고 남은 군졸 51인은 신원을 분별할수없어 7기의 분묘에 합장하여 그순절을 기리고 있습니다.
광성보 전투에서 조선군은 최후의 한명까지도 포로되기를 거부하고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았다합니다.